동심(童心)이 천심(天心)
몇 해 전, 독서 캠프를 통해 작고하신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선생님 삶의 일화를 듣게 되었는데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선생님이 밥상을 차려 수저를 드시는데, 농 밑에서 생쥐 한 마리가 맑은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봅니다. 선생님은 생쥐에게 “같이 먹자!” 하시며 밥상 옆 방바닥에다 밥풀을 놓아두십니다. 세월이 지나고 그 맑은 눈의 생쥐는 선생님과 늘 같이 밥을 먹고 살았다는 것이지요. 이솝 우화에 나올 듯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동화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엿보게 했던 권정생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동심이 천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동심이라면, 부르는 노래가 동요가 될 것이고, 사는 삶이 동화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져 봅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단어에서 ‘동심 충만’이라는 단어로 삶의 화두를 잠시 옮겨봅니다.

15년 동안 열린 ‘독서캠프’
문화 선교 ‘기쁨의 집’에서 한 해도 그르지 않고 15년 동안 독서캠프를 열어왔습니다.
영혼의 여행이라고나 할까요. 기쁨의 집 독서캠프는 그렇게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새로운 눈과 새로운 마음. 새로운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영감의 통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제1회 독서캠프부터 15회에 이르도록 늘 함께 해 오셨던 멘토가 계십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이신 한희철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의 작품 속에는 나직하고 소소한 것들에 대한 연민, 공감, 사랑이 스며있습니다. 도시의 그림자가 길어져 가는 이 시대에 목사님은 사랑의 선지자로 우리들 곁에서 늘 사랑을 노래해 주십니다. 최근에 ‘네가 치는 거미줄은’이라는 동화책이 나와서 독서캠프 멤버들이 한희철 목사님을 모시고 1박2일 독서캠프를 열었습니다.
이 모임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밀양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열어 주셨습니다. 리코더와 바이올린, 플루트, 기타, 하모니카. 여러 악기들에 실린 동심어린 소리들은 우리를 영혼의 고향에 다녀오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에 나온 앨범 수록곡 가운데 ‘하늘을 바라 볼 때’, ‘동백꽃’이라는 노래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맑은 하늘 바라볼 때, 파란 하늘 바라볼 때, 높은 하늘 바라 볼 때 발아래 풀꽃을 살펴요.”
“봄바람에 떨어진 동백꽃이 웃고 있다 떨어질지도 어디로 갈지도 알고 있었나 봐. 나무 위에서 한 번. 떨어져 땅 위에 한 번. 마음속에서 한 번. 그렇게 동백꽃은 세 번 핀다.”

저자 한희철 목사님과의 만남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 한희철 목사님을 모시고 이야기 속으로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사님의 작은 손짓 미소 쉼표 하나하나까지도 작은 이야기로 들려왔습니다. 목사님은 영혼의 벽난로가 되어주셨지요. 뻗은 우리들 손끝으로 전해오는 은혜의 온기가 심장에까지 이르는 것은 일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다 기록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간간히 노트에 기록된 내용들을 잠시 나누겠습니다.


“세상이 점점 콘크리트 숲으로 커져갑니다. ‘내가 이야기라고 하는 망치를 가지고 너희들이 사는 콘크리트 벽을 두드려 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동화를 쓰기 시작했지요. 언젠가부터 우리들 가운데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어요. 그 자리에 광고와 독백이 채우고 있음을 봅니다. 이야기 도중 잠시 쉼표라도 찍을라치면 사람들은 그새 자기 말을 합니다. ‘이만큼 외로운 거구나!’ 싶지요. 가장 작은 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는 예수님. 오늘 주보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눈부신 것들 아닌 눈물겨운 것들 사랑하겠습니다.
거창한 것들 아닌 작고 여린 것들 살피겠습니다.
떨리는 마음과 조심스러운 걸음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걷듯
외진 곳에 닿아 두 손으로 받겠습니다.
가슴으로 품겠습니다. 그렇게 사신 주님 그리 살게 하소서.”

“‘소리새’라는 동화는 굳이 떠나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내 나라 내 땅. 인간다움이지 않나 싶어서 젊은이들을 위해 썼어요.”


“땅 끝 같았던 단강교회 목회를 접고 또 다른 부르심에 순종해 독일로 갔었지요. 힘에 지나도록 어려울 땐 ‘운전대를 마주 오는 차에 들이받으면 안 된다’라며 내가 나에게 두서너 번 이야기해야 했지요. 우리의 영혼이 하늘의 영감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때가 소위 말하는 고난의 때가 아닐까요.”

“기독교의 성례는 성찬식과 세례식이 있지요. 고난은 제3성례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돌아보면 고난은 그분의 손길이 아니었나 싶어요. 흔들리는 게 살아있는 것이죠. 나침반이 향방을 가리킬 때 떨지 않는다면 그건 죽은 것이지요. 오로지 N극 한 쪽만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이 떨며 떨며 제 할 일을 하듯 살아있는 것은 떨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가리킨 옳은 한 방향은 사실 모든 방향을 일러 주는 것이지요. 나약함,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픔을 통과했기 때문에 나뭇잎 하나, 꽃잎 하나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생애 끝에 돌아보아 아쉬운 일이 있다면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 일겁니다.”


그리고 긴 밤의 끝을 목사님의 기도로 마쳤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길 되시는 주님, 이 넓은 세상 마음껏 사랑하게 해 주소서. 우리의 약함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로 채우시는 긴 밤을 함께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
‘네가 치는 거미줄은’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목사님은 거미를 어떻게 해석하실까 궁금해서 제일 먼저 저는 그 답부터 찾아보았습니다.

“…넌 너무나 착하구나, 바보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거미야, 거미인 네가 거미줄을 치고 거기에 걸리는 벌레를 잡아먹는 건 조금도 나쁜 일이 아냐. 그건 하나님이 네게 가르쳐준 네가 살아가는 방법 아니니? 그리고 너처럼 착한 마음으로 친 거미줄은 남을 잡아먹기 위해 친 것이 아니라 ‘여긴 위험하니까 피해가세요’ 하는 표시였을 거야. 사실 곳곳에 거미줄이 없다면 우린 앞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막 날아다니게 될 거야. 그러다간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날아다니는 것이지. 그러니까 걸려드는 우리가 잘못하는 거지, 결코 네가 나쁜 게 아니야”

세상을 이토록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말을 기억하면서 다시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라는 것과 우리가 사는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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