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스페셜 올림픽서 애국가를 부른 박 모세군 이야기

‘모세’의 기적은 성경 속의 홍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선천적 장애로, 태어난지 사흘만에 대뇌 90% 소뇌 70%를 잘라낸 아이. 수술한 의사 소견으로는 살아날 가망이 제로(0%)라는 판정을 받았던 박 모세(22세). 그가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2013년 세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러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출렁이게 했다. 그의 목소리는 호소력 있고 영감으로 넘쳤다.
뇌를 다 잘라내는 수술 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얼마나 살지 모른다고 절망을 이야기하던 의사 소견에만 기대고 있었다면,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모세군은 이 땅에 없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기적의 실체로 우리 앞에 있다. 지적장애 3급, 중증장애 1급으로. 모세는 지금도 지체장애, 지적장애, 시각장애, 자폐, 청력장애를 모두 가진 5중 장애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노래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모세를 만나러 간 날은 엄마와 함께 평창으로 떠날 준비로 바쁜 시간이었다. 세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 애국가를 부르도록 초청된 모세는 해맑은 모습으로 흥분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어젯밤에 한잠도 못 잤어요. 날아갈 것 같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흥분했나 봐요. 이 행복이 쭉∼ 이어지면 좋겠어요. 참 감사해요.”
살 희망이 1%도 없던 아이가 어떻게 이런 기적의 모세로 세워졌는지, 그 놀라운 솜씨가 과연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고 놀라워 모세엄마(조영애, 49세)에게 물었다. 조영애 씨는 ‘절대’라는 표현을 여러 번 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절대 우리가 계획한 것도, 의도한 것도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풀어놓은 모세 이야기는 이랬다.

기적을 이룬 엄마의 기도
임신 5개월의 엄마에게 의사가 내린 결론은 낙태 권유였다.
“뇌류(腦瘤)입니다. 머리뼈가 없어 뇌가 흘러나와 도리가 없습니다.”
‘낙태’라는 간단한 의사의 결론에 시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목사님을 모셔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때 목사님의 말씀은 이랬다.
“기왕에 잉태된 아이인데… 낙태보다는 분만해서 햇볕을 보게 하고… 가더라도 그때 자연스럽게 가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권면 덕분에 아가를 낳았다. 한 여름날. 그 목사님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어주셨다. 홍해를 가른 또 하나의 기적을 기대하며.
그 아이를 잉태하고 있는 동안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가를 낳았지만, 아무도 엄마에게 아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 아가는 태어난지 사흘만에 뇌 9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엄마는 제왕절개 수술로 아픈 배를 감싸안고 어느 새벽 몰래 신생아실로 찾아갔다. 커튼 사이로 겨우 보이는 붕대 감은 아이를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1%의 희망도 없다니…
신생아의 뇌를 잘라내는 대수술이 진행될 때, 의사들은 1%의 희망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절망이었다. 그래서 모세 아빠(박웅기·51세)는 의사들에게 말했다.
“기왕 절망이라면, 의사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기도하겠습니다. 그 결과는 의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 후 의사가 남긴 말은 이랬다.
“대뇌 70%, 소뇌 90%를 잘라냈습니다. 우리 의료진이 한 일은 흘러나와 있는 뇌세포를 잘라낸 일밖에 없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얼마나 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1%의 가능성도 없는 이 결과를 놓고 가족들은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모세 할머니는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만 했다.
가훈 “범사에 감사하라”
하루 이틀 사흘… 아이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병원에 머물 수 없어 퇴원했다. 가난하고 축축한 지하방이었다. 지금도 모세 엄마는 음습한 지하방에 면역력도 없는 아픈 모세를 데리고 퇴원하던 그때 가슴 무너지게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가정의 가훈이 이들을 살린 것일까.
얼마 전 입주한 임대주택 자그마한 아파트 벽에는 예쁜 성구가 걸려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지하방 그때도 감사했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다른 집은 폭우에 집채 쓸려가고 또는 가재도구가 다 못 쓰게 된 집들도 많은데, 모세네 집은 곰팡이만 슬었고 바닥이 질퍽거릴 정도이니 감사했다.
퇴원 후에도 모세는 죽었다 살기를 계속했고, 그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매년 대수술을 했다. 막 태어나서는 뇌를 잘라내는 수술, 그 후에 뇌출혈로 수술, 뇌수가 흐르지 않아 관을 심는 수술, 박은 관이 막혀서 또 수술….
가난한 모세네 가세가 수술비 대기도 힘겨운데, 이상하게도 어떤 방법으로든 그 많은 수술비가 채워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세 엄마는 생각했다. 이 아이를 살리려고 이렇게 애쓰는 것이 이 아이를 너무 괴롭히는 게 아닌가…. 내 욕심이 아닌가. 그리고 아이의 아픔을 대신할 수도 없어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울었다. 울고 또 울며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물을 주셨다.

따라쟁이 앵무새, 모세
아이가 세 살을 넘으니 걷는 건 포기하더라도 기어라도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놀랍게도 모세는 한 손을 짚고 기어줬다. 할머니가 모세를 안고 쉴새 없이 하는 찬양은,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모세가 사도신경을 외운다고 하셨다. 믿기지 않는 얘기다. 말도 못하는 모세가 사도신경을 외운다고? 온 가족 앞에서 모세는 정말 사도신경을 한자도 틀림이 없이 외웠다. 모세는 들은대로 할 수 있는 아이라는 걸 발견했다. 모세는 온 가족의 모든 예배에 참석자였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구역예배나. 늘 사도신경 외우는 것을 들어 속으로 암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르쳤다. 그것도 외워냈다. 찬송을 따라하고….
무엇이든지 남을 흉내내고 따라하는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엄마’라는 말도 제대로 못하던 아이가 말문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들은 것을 외워내기 시작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살아주기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이게 웬 선물인지 감사 감격했다.

암송실력에 온 교회가 놀라
할머니는 모세를 교회의 어린이선교원에 데리고 다니셨다. 성탄절이 가까워져서 발표회를 준비할 때, 할머니도 모세에게 성경을 암송시켰다.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16절까지.
“너희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에서부터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까지 기나긴 성경말씀을 또박또박 다 외워냈다. 모세의 실력에 온 교회가 다 놀랐고 기뻐했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40km가 넘는 길을 매일 오가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재활학교 전과정을 이제 다 마쳤다. 수원시 장애인합창단 단원이며, 또 여러 곳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모세에게는 노래가 기쁨이고 행복이고 사랑이고 삶이다.

모세의 행복 ‘노래’
재활학교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여자 프로농구경기 개막식에서 애국가 부르기 데뷔를 했다. 다시 사랑나눔 위캔에서, 한국 스페셜올림픽에서 모세는 노래했다. 노래하며 모세는 행복해 했다.
이렇게 시작된 ‘모세의 기적’은 오늘 평창 올림픽 개막식 애국가 독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1월 28일, 스페셜올림픽 나경원 조직위원장과 함께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모세는 멋들어지게 애국가를 불러 시청자들 마음을 시원케 해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세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모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 모세야.
의학적으로는 네가 살 수가 없다고 했는데 지금 이 순간 네가 살아 엄마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온 몸에 장애가 너무 심해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했는데 그 모든 아픔을 안고 모든 고통과 장애를 이겨내고 이 시간 노래로 희망과 감동을 전하는 네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고 사랑스럽구나.
너도 알고 있듯이 너의 머리에는 뇌수를 흐르게 하는 관이 박혀있고 그에 연결되는 관이 너의 몸을 지나며 박혀있으니 엄마는 늘 애처롭고 마음이 아프단다.
하지만 그것이 너에게 사슬이 되어 너를 복종시키며 세상에 빛으로 소금으로 필요한 존재로 쓰임받기를 소망한단다.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너의 행복을 지켜 이룰 수 있도록 엄마가 늘 기도할게.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세계스페셜올림픽 이 아름다운 축제의 장에서 노래로서 모든 선수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 너의 삶이 희망을 노래하는 메신저가 되기를 기도할게.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자.
이 시간 엄마는 너무 감격스럽단다.
모세야! 사랑해!!”

아침마당 진행자들도 시청자들도 조직위원장도 모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박 모세의 꿈
모세의 꿈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것. 그것이 모세의 행복이니까.
모세의 노래를 지도하는 백정태선생(수원시립합창단원)은 그의 독특한 달란트를 이야기한다.
“모세는 지적장애와 신체장애가 함께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노래할 때는 전혀 장애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따라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장애를 가진 학생을 가르친다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어요.”
모세가 노래를 너무 좋아하고 또 행복해 해서, 백선생은 모세와의 시간이 즐겁다. 노래를 너무 좋아하니까, 두 시간 레슨에 지치는 기색이 없단다.
“두시간 레슨은 일반인들도 쉬운 게 아닌데, 전혀 힘든 내색 안하고 합니다. 집에 가서는 너무 힘들어 하면서도 배우는 시간에는 모든 걸 잊는 것 같습니다.”
백선생님은 모세가 내년에 대학에 잘 들어가서 기량을 키우고 발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모세의 꿈이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노래하면서 모세도 행복하고 싶기 때문”임을 알기에.
누가 장애를 선택해서 태어났을까. 누가 장애가진 아이를 낳고 싶어 낳았을까. 오늘 우리가 다시 모세의 기적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 모세 엄마가 그 아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 그 손길이 놀랍다.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모세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세네는 그저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그 길을 인도하시는 그분만 바라고 순종하며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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