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 씨는 교만에 관한 말을 들으면 항상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성경에는 삶에 경각심을 주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유독 이 단어를 흘려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교만은 일만 악의 뿌리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침체를 겪을 때 이런 말이 들리면 곧바로 얼마간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경아 씨에게 죄를 쌓아 두지 않게 하는 깨우침이라고 여겨져 쓴 약처럼 삼켜온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반에서 회장이 되고 학교 조회 시간에 애국가 지휘를 하게 되자, 경아 씨 엄마는 ‘교만하지 말라’는 말을 시작하셨다. 당시 잘 모를 말이지만 동시에 또 알 것만 같았다.

쓴 약처럼 삼켜온 그 말
중고등 학창시절을 여러 활동으로 재미있게 지내다 대학에 낙방했다. 경아 씨는 자신의 부풀려진 모습이 냉철한 시험에 드러남을 깨달았다. 주위에선 시험 운이 없다고도 했지만 경아 씨는 자신이 실제보다 크게 보인 부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족한 대학생활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며 지내게 되었다.
첫 직장은 도전과 훈련을 주는 가운데 활기찬 생활을 하게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지식을 넓혀야 하는 일터에서 움츠리는 자세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 경아 씨 엄마는 ‘교만’ 훈계를 다시 시작하셨다. 차려 입고 출근할 때나 퇴근해서 이런저런 얘기 좀 할라 하면 그 단어는 양념처럼 쓰였다. ‘알았어요.’ 늘 머릿속에 맴돌 만큼 이어진 그 소리….
결혼하자 남편은 경아 씨의 입시 낙방 이야기를 안타까워하며 힘을 주었고, 경아 씨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깨가 가벼워진 느낌으로 살던 어느 날, 남편이 엄마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얘기할 때 잘난 척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엄마의 훈계가 필요 이상의 잔소리로 여겨졌다면 남편의 이런 말은 삶을 공유하는 아내로서 몸부림치면서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몫이었다. ‘오케이, 조심할게.’
그러는 중에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아이들을 키워 마음껏 뒷바라지 하지 못한 안쓰러움이 일다가, 감사와 대견함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엄마, 우리 얘기 어디 가서 하지 마세요.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뭐, 뭐라고…’ ‘너희가 원하면 그러지.’ ‘따끈한 얘기들을 제때 나누지 않으면 식어 버릴 거 같아서 한 번 하는 건데…’ ‘남들이 자식 얘기를 할 때 분위기 맞추며 같이 말하는 것도 안 되나?’
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표현은 잔소리로 들리지도 않았고, 억지로 참아야 하지도 않았다. 어렵겠지만 그러겠다고 곧 받아들이고 결심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안 좋은 영향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오랜 인생과제로 느껴져
세대를 거치며 경아 씨에게 온 우려의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느껴지는 내용은 같았다. 교만, 잘난 척, 자랑- 그런 거 하지 말라는 말이다.
경아 씨는 오랜 인생과제를 느끼며 몇 자 적었다.
“난 말을 맘대로 할 수 없다. 더욱이 자랑은 할 수 없다. 남들이 드러내는 것을 달관한 듯 듣기만 하는 게 때론 힘들어도… 주님, 저들은 되도 나는 안 되지요?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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