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장소 ‘잃어버린 인형들의 방’
어린 시절, 우리 집 천장에는 네모난 상자를 붙여놓은 듯 불룩 튀어나온 공간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시멘트로 발라져 있는 것이 이상해 보였는데 어린 마음에는 어쩐지 비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기 보다는 멋대로 상상하기 좋아했던 나는 그곳을 ‘잃어버린 인형들의 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내가 그렇게 부른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었다. 소중히 아끼며 갖고 놀던 인형이나 머리핀, 구슬 등이 어느 순간 사라질 때가 있었다. 어디에 흘려 잃어버린 것이 분명했겠지만 당시로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다름 아닌, 천장에 불룩 튀어나온, 비밀스러워 보였던, ‘잃어버린 인형들의 방’으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했다.
나중에(아마도 이사를 가게 될 때) 그 시멘트를 깬다면, 꽉 찬 플라스틱 저금통에서 동전이 쏟아지듯,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잃어버렸던 인형들이 우르르 쏟아지리라 여겼다.
물론 예상은 빗나갔다.
이사를 가게 될 때 그곳을 깨지도 않았을 뿐 더러 그곳은 예상했던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그저 전기 배선 장치를 시멘트 상자로 덮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인형들의 방 따윈 없었다. 한 번 잃어버린 인형은 그걸로 끝나는 것이라는 것이 어린 마음에 아프고 쓰렸더랬다.

연말연시 용기 내어 찾아보기
사람의 관계 또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는 매일 만나고 자주 연락하던 관계들이 있다. 스터디 모임이나 동호회도 있고 직장 동료, 학교 동창들도 있다. 그러다 새로운 집단에 속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자주 연락하고 친밀했던 관계들이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한 해 두 해 연락하거나 만나는 횟수가 뜸해지다 몇 년이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 인연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어쩌다 연락이 끊어졌나, 고개를 갸웃거릴 땐, 이미 ‘추억 속의 인물’이 되어 버린다. ‘잃어버린 관계들의 방’에 들어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누군가 일방적으로 연락해서 예전의 관계로 천연덕스럽게 회복되는 경우란 많지 않다. 끊어진 관계들은 대개 추억이나 과거 속에 남기 마련이다.
이제는 끊어진 관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인연 등 이 모든 잃어버린 관계들이, 그래도 잃어버린 인형보다는 찾기 수월하다. 용기 내어 안부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낸다면 그 가운데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나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연락을 이어가고 싶은 이가 있다면 연말연시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안부 인사를 건네고 새해 축하 인사를 나누는 것. 그것은 ‘잃어버린 관계들의 방’을 과감히 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뜸했지만 선뜻 연락하기 힘들었던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 연말연시 인사를 핑계로 연락해보면 어떨까 싶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 ‘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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