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게 있다면 시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테지요. 새해를 맞이하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난해로 삶을 마감했던 분들입니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시던 한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분을 위해 달려가던 노래 길에, “저... 엄마가 방금...” 도착 삼십분 전에 받은 전화였지요. 또 한 분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채를 쓰고 말았지요. 불어난 빚에 독촉 받고 협박까지 받다가 결국 농약을 들이키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지요. 그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셔서 주저하며 시간만 보내던 저였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 사람이 죽을 때 청각이 가장 나중에 사라진다는 사실. 어쩌면 어머니의 귀는 살아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냉큼 달려가지 못한 게으른 마음에 죄책감이 먹구름처럼 밀려옵니다.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구나! 아니, 살아있는 나에게 더 이상 그런 기회가 사라졌구나 싶어 삶의 가치를 다시금 헤아려 보게 됩니다. 새해를 맞는 마음이 상쾌하기는커녕, 무겁고 축축하기만 합니다. 새로운 마음은 새롭게 맞이하는 기분이라기보다는 이전에 어떻게 살았느냐의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저의 속사람을 괴롭힙니다.
사랑이란 ‘나와 당신’이 아니라 ‘나의 당신’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라 하지요. 그 사실을 깨닫는 게 그렇게 어려워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게 주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새해를 맞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미래를 계획함에 앞서 지난날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날 짧게 썼던 글들과 제 영혼의 눈길에 닿았던 글들을 나눔으로 새해 계획의 전부일지도 모를 반틈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모자라고 짧고 부끄러운 글들이지만 연민으로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봄 일기
흐르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죠. 바람이든 물이든 시간이든 흐르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죠. 거기 마음까지 실린다면 사랑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요. 사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요. 바로 지금, 지금이 그때죠. 바로 지금, 지금이 기회죠.
살아 있는 건 사랑을 원하나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주시네. 꽃을 보면 꽃 마음이 되고 별을 보면 별 마음이 되지요. 성경을 봅니다. 사람을 봅니다.
인간의 마음은 신의 마음을 떼어서 만든 것.
비가 내립니다. 왠지 슬픕니다. 그런데 만물은 심히 기뻐합니다.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만물이 기뻐하니 같이 기뻐하기로.
우리의 마음이 동시라면, 부르는 노래가 동요가 될까.
사는 삶이 동화가 될까… 동심 충만한 삶이 되길…
한 떨기 꽃 속에 천국이 있네.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네.

여름 일기
곁에 있어도 사랑 아니면 모르지. 정말 모르지.
친구야, 우리 2%만 더 푸르자! 그렇게 우리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누굴 만나든 거기, 2%의 푸르름이 더해지겠지. 혹시 아니 그 2%의 푸르름들이 모여 모여 사람을 살릴지 세상을 살릴지 친구야, 우리 2%만 더 푸르자.
아침 이슬은 신의 땀방울. 저녁 노을은 신의 눈시울.
두 세상 구름 위의 세상 얼마나 푸르고 푸르던지. 그러나 이내 지루했다. 많이. 비오고 바람 불고 눈 나리는 구름 아래의 세상 아름답다. 심히.
우연히 아름다운 약속 지켜 즐겁게 참된 경지를 깨닫네. 사람이 좋으면 추한 물건이 없고 땅이 아름다우면 놀라운 시구도 짓기 어려워라.

가을 일기
다 주고도 미안하지요. 져주고도 미안하지요. 사랑은. 사랑은.
예술의 정의는 ‘우리로 견디게 하는 것’이란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추억‘이라고 한다.
들꽃을 봅니다. 솔로몬의 영광보다 나은. 이 세상의 시를 다 모아도 들꽃 한 송이만 못하리.
그대여! 진실이 거절되었다고 울지 말아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 그 뿐.
삼라만상… 하나님 생각의 결과물. 어찌 함부로 말하고, 어찌 함부로 밟고 어찌 함부로 대하랴.
위대한 여름이란 참으로 무덥고 견디기 힘들었던 나날들. 아름다운 날이란, 위대한 여름이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져 참으로 누군가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 취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란…
나뭇잎 한 장에 핏줄 같은 길이 있네. 우주를 위해.
사랑하며 사는 인생. 그것이 우리의 진짜 인생이라오!
폭염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견디는 것 뿐. 그렇게 여름을 견뎌 가을… 태풍은 도대체 몇 번이나 오시려는지… 우리는 위태로움의 결정체를 먹는다. 그분 앞에 그러한 우리네 삶.
길바닥에 떨어진 꽃을 주워 기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며 소년 때는 일하듯이 놀고 청년 때는 초침처럼 일하고 중년 때는 분침처럼 일하고 장년 때는 시침처럼 일하고 노년 때는 놀듯이 일하고.
누군가의 눈물 되어 사랑이 되어 세상을 사리는 비가 됩니다.

겨울 일기
생각하기보다 기도하기로 한다. 기도하기 보다는 미소 짓기로 한다. 미소 짓기보다는 손을 잡아 주기로 한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사랑 속에서, 사랑을 모르며, 산 순간들… 그것 아니겠는가.
“신뢰가 있으면 허물이 뭐 대숩니꺼…” 한 지인의 말.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은 내 잘못.
많은 사랑이 많은 능력.
길을 가다 잘려나간 은행나무 그루터기를 보았네. 놀랍게도 그 그루터기 가운데 하트 구멍이 있었네. 나의 삶. 비고 비비가 남긴 가슴 아픈 구멍이 있다면 이왕이면 하트모양 구멍이었으면 좋겠네. 내가 죽어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저 하트 구멍을 가진 은행나무 그루터기였으면 좋겠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지요. 감사는 얼굴을 아름답게 만드는 훌륭한 끝손질이라고. 감사의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습니다. 하얀 동화지 같은 그분의 마음에 맑고 착한 일기 같은 일상이 그분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노래가 되길 바라며 새해를 출발합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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