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떨어져 직장을 다니며 생활하는 정혜에게 이번 크리스마스는 타향에서 처음 겪는 특별한 시즌이다. 학생 때는 방학이 있어 여름, 겨울 집을 오고 갔는데 직장인이 되니 쉽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차로 두 시간 걸리는 곳에 공부하며 일하는 오빠가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전도사 일을 하는 오빠는 늘 정혜보다 시간내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래,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에는 오빠 교회 근처에 호텔을 얻어 함께 지내야겠다. 크리스마스 행사로 오빠가 교회를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할 테니 그 시간을 줄여 주는 거야.”
정혜는 교회 근처에 깨끗한 방을 예약하고 며칠간 지낼 짐을 꾸렸다.
‘책 볼 시간도 있을 거야. 오빠 크리스마스 선물은 뭘 할까.’
정혜는 벌써 몇 년째 크리스마스를 타지서 홀로 지낸 오빠와 함께 있게 된 게 기뻤다. 집에서 교회가 4, 50분이나 걸린다니 오빠가 며칠간 편하겠지 하며 낯선 곳이지만 짐을 풀었다.
그 밤 오빠는 아이들 노래극 연습을 마치고 몇 명을 집에 데려다 주고 온다고 좀 늦게 왔다. 그래도 늦은 저녁을 먹으며 반가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저번에 말했지? 크리스마스 다음날 어느 교회 수련회 인도하러 간다고.”
12월 24일.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이른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하자고 했다. 그래 알았어. 정혜는 낮 시간에 동네도 구경하고 책도 보며 호텔방서 지내다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른 저녁이면 4시, 5시? 그런데 전화가 안 온다.
배는 고파오고 지금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지려 했다. 6시가 되어서 오빠는 저녁 먹으러 갈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 노래극 마지막 리허설이 이제 끝나 간단히 해결할 테니 너도 적당히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나 혼자? 이런 날, 약속해 놓고 이럴 수가….
정혜는 차라리 친구들하고 집 동네에 있는 게 나을 뻔했다고 생각하며 낯선 동네 패스트 푸드점 구석에서 요기를 했다.
아이들의 노래극을 보며 마음이 약간 좋아지긴 했다. 그 밤, 오빠는 그냥 푹 쓰러져 자고 말았다.
12월 25일.
오빠는 일찍 서둘러 말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교회로 나섰다. 크리스마스 예배와 만찬을 마치고 나자 오빠는 다음날 떠날 수련회에 벌써 마음이 가 있는지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 정혜의 전화 목소리가 떨렸다.
“오빠가 많이 바쁘지?”
“같이 식사하기로 했는데 오지두 않구….”
“그래서 어떻게 했어?”
“혼자서 패스트푸드 먹었어. 호텔에 와서두 잠만 자.”
엄마는 두 아이 상황이 너무도 잘 보였다. 결혼하고 첫 번째 크리스마스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이후 해마다 비슷한 상황을 만나며 목회자 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애쓰며 살았던가.
교회 일이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에 전도사 아들. 오빠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겠다고 호텔까지 얻어 근처로 간 귀요미 딸.
엄마는 나중에야 함께 사는 건 기다림이 반이라는 걸 알았는데, 우리 딸은 벌써 이번에 많은 걸 알았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