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땅을 밟았을 때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아직도 잔잔한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 땅의 풋풋하고 정겨운 향기를 맡으며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모두 둘러앉아 함께 찬송을 부르고 어머니께서 대표로 기도를 하셨는데,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묵상할 성경 본문으로는 시편 136편을 정했다. ‘감사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다. 나는 이 시편 136편을 묵상하면서 ‘이것을 기록한 기자는 감사가 생활화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편 136편에는 “감사하라”는 말씀이 무려 스물여섯 번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한 절도 빠지지 않고 “감사”가 넘쳤다. 선하신 하나님, 지금도 구체적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26가지 내용을 시편기자는 조목조목 감사하고 있었다.

26가지 은혜
감사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고, 날마다 감격하며 감사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편 기자가 26가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했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그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26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가족들과 감사 제목을 하나하나 나누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도 참으로 크신 은혜를 베푸셨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도 한 가지씩만 감사 제목을 말씀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무엇보다도 너희들 모두가 돌아와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달리 아직은 믿음이 연약한 아버지로부터 이런 고백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옛날 부모님이 주님을 영접하시고 구원받으셨을 때의 감격이 되살아났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아버님의 구원을 위해 40일 새벽기도를 작정했고,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새벽기도를 하면서 아버지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알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마지막 40일째 되던 날 교회에 나가길 완강하게 거부하시던 아버님이 마음의 문을 여시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신 일은 당시 풋내기 신자였던 내가 처음 겪은 귀한 영적 체험이었다.
나는 감사 목록을 적으면서 우리 4남매 중에 유일하게 주님을 믿지 않았던 누님이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순간도 떠올렸다. 누님의 구원을 위해서는 25년간을 기도했는데, 미국에 있을 때 우리 집에 놀러온 누님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컸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절로 감사 찬송이 흘러나온다.
누님 자신도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수없이 눈물을 흘렸고, 입술에서는 감사의 고백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과 누님의 구원의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26번이 아니라 100만 번의 감사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100만 번의 감사
실제로 텍사스의 한 성공한 실업가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100만 번 기록한 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100만 번의 감사”였다. 그런데 원고에는 100만 개의 감사제목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가득 적혀 있었다. 결국 어떤 출판사에서도 출판하겠다는 제의를 해오지 않았다.
사실 그는 단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100만 번이라도 감사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 인생의 축복과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술과 여자에 빠져 폐인이 되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주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사업가로도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놀라운 은혜와 감격을 한 권의 책에 담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아무튼 해프닝으로 끝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출판되었다면 나는 아마 한 권 사서 소장했을 것 같다. 사업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노트에 빼곡히 적었던 기억이 있다. 가슴 설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100만 번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시편 기자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고 했다. 그의 감사는 26번만의 감사가 아니라 지면만 허락한다면 100만 번이라도 감사할 수 있을 것처럼 시 전체에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입술에서 감사가 넘치는 것은 마음에 감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감사가 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되지 않을 것이 없다.
시편 기자가 자신의 인생 속에 인자하신 주님이 행하신 일을 하나하나 감사했던 것처럼 내 인생에 임했던 주님의 축복을 가만히 헤아려 보면 어떨까? 26번의 감사가 아니라 100만 번의 감사로도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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