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릴레이 ⑨ 정성윤 전도사님께

1971년 6월 25일은 저의 생일입니다. 모든 국민이 6‧25 전쟁의 아픔을 상기하며 슬퍼할 때, 저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제 생일을 자축하곤 했었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리어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어머니와 함께 한다는 즐거움에 새벽예배도 참석하던 성실한(^^:;) 주일학교 학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저에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교회에서 찬양하는 것이 좋았고, 친구들과 교회학교 선생님이 좋아서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단체 영화 관람을 갔는데,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를 다룬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영화였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못 판 위를 걸으며 찬양을 하시던 그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저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너무나 소중한 거구나, 생명보다도 귀한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보다는 “나도 지켜야지”라는 각오를 수없이 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23년 동안 저는 구원의 확신은 있었지만 열심은 없었던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대학졸업 후 곧바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2000년 1월에 귀국을 하면서 그해 2월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 4부 예배 나사렛 성가대 솔리스트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적당히 꾀를 부리며 주일예배 외에는 그 어떤 성가대 행사도 참석하지 않으며 교회를 다녔습니다. 솔리스트라는 권위를 누리며 성가 대원들과도 거리를 두고 지냈는데 그 이유는, 성가대 대원들이 기도원 예배, 기도회, 수련회 등 많은 행사에 참여를 권유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거절을 하다 하다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2003년 여름 성가대 하계 수련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게 되었죠. 그 날 저녁 성가대 솔리스트 음악회에서 찬양을 하던 저는 성령을 받게 되었고, 이어진 예배 시간에 그 동안의 삶을 회개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말 그대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되죠. 그 날은 2003년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민족 해방의 그 날이 세상에 눌려있던 저에게도 자유와 해방을 주는 날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니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고 성경을 알고 싶어졌는데 막상 신앙생활을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었죠. 그러던 중 저희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의 사모님이신 정성윤 집사님께 고민을 말하게 되었고 정 집사님께서 마침 저와 같은 구역이라며 도와주기 시작하셨습니다(정 집사님께서 저를 위해 눈물로 중보를 많이 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왜 드려야하고,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며, 찬양을 어떤 마음의 자세로 해야 하고, 성경은 왜 읽어야 하는지, 헌금은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부분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하도록 도와주셨어요. 부족해도 칭찬 해주시고, 그 수많은 질문에도 일일이 답을 주시고,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도 짜증 한 번 안내시고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하시는 것에 열심을 내주셨죠. 기도원이 뭔지도 모르는 제게 그 기쁨을 알려 주시고, 금식 기도의 힘도 알려 주시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든 저를 매일 새벽 데리러 오셔서 40일 작정 새벽기도도 하게 하시고, 새벽기도 후에 교회 앞 콩나물 국밥집의 그 국밥 맛도 알게 하시고….


정 집사님은 저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데도 친구 이상으로 허물없이 지내도록 배려해주시고 사랑 해주셨어요. 어느 금요일은 금요 철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탔는데, 집사님도 저도 갑자기 순대국밥이 먹고 싶어 나섰는데 저희 둘 다 아침 금식인 것을 깜박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났어요. 시계를 보니 밤 11시 39분이었습니다. 12시까지의 시간은 21분 남았고 저희 둘은 마음이 급해져서 서두르기 시작했고, 강남역 뒷골목에서 봤던 순대국밥 식당을 떠올리며 출발했는데 금요일 밤이라 차가 많아서 3분이면 갈 거리를 10분 정도가 걸리게 되었어요. 남은 시간은 10분. 그 뜨거운 국밥을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식당 앞에 도착한 순간!! 주차공간이 없어서 근처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집사님은 주차장으로, 저는 식당으로 먼저 들어가면서 주문을 하고 빨리 달라는 재촉을 3번 정도하고 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시계를 30번은 본 것 같아요. 1초가 얼마나 아깝던지, 학교 다닐 때 수학 시간은 그리도 느리게 가더니, 순대국밥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빠를 수가 없더라고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국밥이 나오고 남은 시간은 3분 남짓, 저는 2개의 순댓국에 밥도 말아놓고 들깨가루, 후추, 고추장 양념장을 넣은 후 식히기 시작했고 이윽고 정 집사님께서 적당히 흐트러진 다급한 모습으로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계셨어요. 정 집사님께서 앉자마자 저희 둘은 최대한 조심스럽고, 빠르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말없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고, 12시 ‘땡’ 하면서 숟가락을 놓고 정신을 차려보니, 둘 다 입천장 데었다고 찬물을 들이키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져서 입을 틀어막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아파하며 울어주고, 함께 기뻐하며 웃어주고 무엇보다도 함께 기도해주시던 정 집사님을 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개인 과외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슬픔이 있어도 기쁨이 있어도 언제나 기도에 게으르지 아니하시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시며 이 땅에서의 삶을 주님으로 채워 가시는 모습에서 많은 배움을 얻고 또 도전도 받습니다. 지금은 전도사님으로 또 신학교 교수님으로 사역을 감당하시는 정성윤 전도사님.


“전도사님. 전도사님은 하나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최고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십니다. 너무나도 사랑하고 또 가슴 깊이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따뜻한 국밥 먹기 좋은 계절이네요. 우리 오랜만에 순대국밥 한 그릇 먹어요. 이번엔 천천히 식혀가면서요. ^^”

성악가 박유미 교수(순복음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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