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정부 수립으로 한국교회는 이전에 없었던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제헌국회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고,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기독교 의식으로 치른 신생 대한민국은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기독교 국가’로 불릴 만하였습니다. 교육 수준과 정치 및 행정 경험에서 앞서는 다수의 지도자와 전국 조직망을 보유하고 있던 교회는 국내 정치 기반이 취약했던 이승만을 ‘친미‧반공’을 이유로 도왔고,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승만은 기독교인들을 대거 국가 요직에 배치하고 군종 제도를 시행하는 등 각종 특혜를 베풂으로써 기독교를 사실상의 ‘국교’로 대우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리한 배경에 힘입어 이승만 집권 12년 동안 한국교회는 “우뚝 섰다 교회당”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정교유착의 수렁
그러나 권력이 주는 안락함은 이내 한국교회를 정교유착의 수렁에 빠뜨려 기독교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아예 이승만 독재를 뒷받침하는 정치집단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교인들은 각종 관제 데모와 선거 운동에 동원되었고, 심지어 당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던 ‘한국기독교연합회’가 직접 선거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이승만 지지 활동을 벌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종교 전쟁으로 규정하고 이승만을 모세로, 이기붕을 여호수아로 묘사하는 등 줄곧 불의한 권력과 유착함으로써 한국교회는 한갓 체제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하였던 것입니다.

국가권력 신격화
국가권력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군사정권 시기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합법 선거로 구성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한국교회는 “조국을 공산 침략에서 구출하며 부정과 부패로 기울어져 가는 조국을 재건하기 위한 부득이한 처사”로 규정하고 이를 환영하였으며, 삼선개헌과 10월 유신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의 지도자 대다수가 지지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권력과 유착해온 행태를 되풀이하였습니다. ‘대통령조찬기도회’를 열어 불의한 정치권력을 축복하였으며,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권력에 순응할 것을 설교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 없이는 이 땅에 교회도 있을 수 없다”며 국가 질서와 국가권력을 신격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호국 전통과 충효 사상을 내세우며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권력의 짝패가 되어 국가주의와 상명하복의 봉건 윤리를 퍼뜨렸습니다. 이처럼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과 유착‧협력하고 그 대가로 온갖 특혜를 누리며, 자신의 몸집 부풀리기에 몰두하며 ‘넓은 길’을 걷는 사이에 기독교는 한낱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았습니다.

‘좁은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모든 교회, 모든 기독교인이 ‘넓은 길’을 가지는 않았습니다. ‘좁은 길’을 꿋꿋이 걸어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팎의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삼선개헌 반대 투쟁에 앞장서며 기독인들을 향하여 “복음 위에 서서 불의를 바르게 찾아내어 규탄하고 의를 찾아 세우는 역군”이 될 것을 촉구했던 김재준 목사, 유신헌법 반대 집회를 모의한다는 이유로 기도회 도중 체포되어 유신 이후 최초의 성직자 구속 사건의 주인공이 된 은명기 목사, 남산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 반대 전단을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구속된 박형규 목사를 비롯하여 여러 기독교인들이 신앙 양심에 기대어 사회 정의, 인권, 민주화를 위한 행동에 나섰고, 이들의 교회와 기독교교회협의회 같은 기관들이 민주화 운동의 근거지이자 방패막이로 구실을 수행하였습니다.
군사정권 시기 기독교 민주화 운동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서 눌린 자들, 가난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과 더불어 사신 것 같이 살겠다”는 결단의 표현이었습니다. 불의한 국가권력에 맞섰던 당시 기독교인들의 신념을 담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은 “우리의 말과 행동의 확고한 기초는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 메시아 왕국의 포고자이신 예수, 민중 속에 활발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성령에 있음”과 “하나님은 역사에서 악한 세력을 심판하였음”을 고백하고, 폭력으로 양심을 짓밟고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정치 현실과 가난한 노동자‧농민을 착취하는 경제 체제에 맞서 순교의 각오로 역사 변혁에 참여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다짐이 있었기에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교회의 빛이 꺼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유일신 신앙이 ‘버팀돌’
국가와 권력에 횡포에 맞서는 기독인들의 노력은 교회 지도자들의 민주화 운동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정하여 모든 국민이 국기 앞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도록 강제하는데 맞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기독학생들과 교사들의 항거도 기억할 만합니다. 1972년과 73년에 전남 광양의 진월중앙국민학교와 충북 제천의 동명국민학교에서 기독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였으며, 그 배후로 지목된 광양 오사교회 주일학교의 양영례 교사 및 제천 남천교회 백영침 목사와 강태호 교사가 구속되었습니다. 김해여고에서는 국기 경례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여섯 명의 학생이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땅에 있는 그 무엇도 신성시하거나 절대시할 수 없다는 유일신 신앙이 이들의 버팀돌이었습니다. 그들의 희생, ‘좁은 길’을 걸으며 예수처럼 살겠다는 믿음과 결단이 권력의 하부기관이자 이익집단으로 타락해가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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