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소 같은 느낌의 산 페르난도 병원에 들렀습니다. 앙헬레스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현지 교우들의 교통사고 때문입니다. 용접공인 데이브의 아빠와 다섯 살 난 양아들 데이브. 그리고 용접보조공인 헨리. 이 세 사람이 타고 있던 소형 차량이 마주오던 덤프트럭 아래로 깔려 버리게 된 것입니다. 데이브와 데이브 아빠는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쳤고 헨리는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에 선교사님을 통해 환우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데이브 아빠는 그래도 경제적인 능력이 조금은 있는 가정이었고, 보호자로 아내인 테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이브 아빠의 보조로 일하는 헨리는 가족도 없었고 돌봐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눈물’로 닦아준 헨리
우리는 다른 일정 보다 헨리를 돕는 게 가장 큰 일이라 여겼고 일행 중 한 분은 일회용 장갑을 끼고 헨리의 기저귀와 옷 침대커버를 깨끗이 갈아 줄 수 있는 영광을 달라며 부탁까지 했습니다. 참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헨리를 깨끗케 하기 위해 물에 적신 수건과 물티슈를 준비해 놓고 담요를 들추는데 대소변으로 눌러 앉고 찌든 악취가 고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일회용 장갑을 끼고, 여성인지라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고 바지와 기저귀를 벗기고 물티슈와 물수건으로 부지런히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상체 옷을 벗기고 겨드랑이와 등 밑으로 손을 넣어 구석구석 닦아 냈습니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있던 일행이 갑자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되도록 놔 둘 수 있냐며 나지막한 소리로 하소연을 하면서 잠시 멈추어 울고 닦으며 울고 그렇게 다리에서 발바닥까지 깨끗하게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헨리와 침대 그의 주변은 그 병실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테스가 두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마치 대중 연설을 하듯이 소리를 크게 내며 타갈로그어로 외쳤습니다.
“이 병원과 병원사람들에게 외면당한 헨리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와 헨리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입혀주고 모든 더러움을 씻어 주었어요. 우리 필리핀 이웃들이 외면하고 가까이 보호자들도 돌봐 주지 않았는데 이분들이 가족이 되어 이렇게 사랑을 베풀고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아픈 이웃 더 살펴주고 더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무슨 일인가 하여 중재하러 왔다가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잠시 후 병실에 있던 모든 필리핀 현지인들이 그녀의 말에 감동을 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병실에서 헨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기타 하나에 마음을 실어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형통한 길 주옵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현지인들은 우리가 부른 노래가 무슨 노랫말인지도 몰랐지만 함께 박수치며 헨리를 축복해 주었고 그렇게 헨리를 위한 작은 콘서트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우리 일행은 헨리의 손을 잡고, 굵고 짧게 한 마디씩 기도를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일회용 장갑을 꼈던 일행은 눈이 붓도록 울었고 우리 가운데는 따뜻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습니다.
숙소를 향해 가는 길에 저는 테스가 용감하게 나서서 연설을 하듯 외치는 모습을 떠 올렸습니다. 위대한 순간을 목도한 것입니다. 그 외침은 아마도 제가 살아가는 동안 제 기억 속에서 잊혀 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지요.

함께 울어주기가 ‘사랑’
가슴에 눈물의 강이 흐릅니다. 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빵 하나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보다 작은 사랑 하나 받지 못해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헨리의 손을 잡고 기도했을 때 보았던 헨리의 굵은 눈물을 기억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펜 끝에서 내내 쓰여집니다. 다음 날 비가 내렸습니다. 빗방울을 보며, ‘내리는 이 비 속엔 누군가의 땀이 들어 있고 누군가의 눈물이 들어 있겠지.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사랑이 되어 세상을 살리는 비가 되기를 바라네’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사랑하면 많은 능력이 나타나겠지요. 사랑이란 ‘나와 당신’이 아니라 ‘나의 당신’이라 부르게 된다지요. 아픔과 사랑은 같은 말이라는 걸 이제쯤 압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언젠가 썼던 일기 같은 시를 나누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보도블록 틈에
담벼락 돌 틈에
피어있다.
솔로몬의 영광보다 나은 꽃.
맑은 하늘 바라볼 때
발아래 풀꽃 살피자 했는데…
낮은 님, 작은 님 속에서
보곱던 하늘을 보자.
좁은 길 걷는 벗님에게서
보곱던 그분을 보자.
내려가 하늘을 살자.
내려가 그분을 살자.
[낮은 자의 노래 / 좋은날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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