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12월에 들어서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기 시작하셨다.
여러 남매가 출가해서 아이를 둘씩 가지니 직계만도 20명의 가족이 되었다. 멀리 외국으로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제때에 카드를 받게 하려면 12월 첫날부터 구상을 해야 했다. 최근에 찍은 사진 중 좋은걸 골라 각 집에 보낼 것을 복사하고 사진 설명 붙이기, 카드 고르기, 성탄의 기쁨을 나눌 문장 만들기, 주소는 다들 맞는가 등등.
우리는 아버지의 카드가 도착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을 느끼기 시작하곤 했다.
“사랑하는 셋째 딸에게”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힘 있는 글자를 보노라면 그 사랑이 가슴 속으로 깊이 타고 내려갔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한해를 잘 마치는 감사에 늘 감격스러워 하셨다. 한자와 영어 단어를 섞어 정확한 이해를 하게 하려는 자상한 글과, 두툼한 손으로 눌러 써 볼펜 자국이 배겨 나온 글자들은 아버지의 진심이 그렇게 담긴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끼워온 사진에는 자세한 설명을 따로 붙여, 접었다 폈다 하게 했다. 손자들 앞으로는 호주의 색채를 띤 코알라, 캥거루, 웜뱃, 수상 스키를 타고 오는 산타 할아버지의 카드를 잘도 골라 보내셨다. 우린 아버지의 카드 보내는 솜씨를 보며 “대단하시네”, “여전하시네”라며 부모님의 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해부턴가 철자법이 틀리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애기하셨다.
“이제 아버지 카드 보내는 거 그만 하시라고 해야 겠다. 카드 한 바퀴 돌리시려면 너무 수고를 많이 하신다”고.
“카드 쓰기 전에 초안 잡느라 반나절, 카드에 연필로 줄그어 정서하고 나서 줄 지우느라 애쓰고, 외국 주소 바르게 쓰는 과정 하나하나가 힘들어 보인다”고 하셨다.
아, 아버지는 설계를 하셨던 분이라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하셨구나. 그래서 카드가 더 보기 좋았구나.
몇 해 전부터 우리는 아버지의 그런 카드를 받지 못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데 익숙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때가 되면 카드와 작은 선물이 올 줄 알았나 보다. 아버지의 카드가 안 오는 즈음부터 비슷한 카드도 보기 힘들다. 정감 있는 말이 쓰인 눌러쓴 글씨의 카드….
올해는 내가 아버지처럼 몇 장 준비해야겠다.
최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 따스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리워 할 분들에게 몇 자 적어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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