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새로 생긴 아버지 취미 ‘옷 쇼핑’
친구의 아버지는 꽤 성공한 사람이었다. 내가 듣기론, 평범한 회사원으로 입사해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른 분이라고 했다. 그 분은 근검절약이 늘 몸에 배어 있어 옷 한 벌도 맘 편히 사 입지 않았다고 한다. 매우 엄격하시고 자기 절제가 뛰어난 분인 듯싶었다.
그런 아버지가 은퇴를 하시고 생긴 취미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쇼핑’이라는 것이다. 어떤 쇼핑이냐 하면, 주로 옷을 사는 거란다.
처음엔 친구가 자신이 입은 옷을 가리키며, “이거 우리 아빠가 사다주신 옷이야”라고 했을 때 나의 반응은 이랬다.
“아, 너희 아버지도 나이 드시니까 많이 변하셨다. 자상하게 아들 옷까지 사다 주시고.”
그러자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말이야, 다 중고 의류 파는 데서 산거야.”
그러고 보니 친구가 입은 면 티는 목이 조금 늘어나 있었고, 트레이닝 바지 무릎은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벼룩시장이나 중고 의류 파는 데서 천 원, 이천 원짜리 옷들을 잔뜩 사온다고 했다. 개중에는 더러 입을 만한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너무 허름해서 입고 다니기엔 난감한 옷들이라는 거다.
“그런 곳에 가서도 입을 만한 옷을 골라 오시는 게 아니라, 무슨 한풀이 하듯 마구 집어오시니까 문제라는 거야.”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사 오시는 ‘헌 옷’의 사연
친구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자주 헌옷을 얻어다 입으셨고 그나마도 제대로 입질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벼룩시장이나 중고 의류점에서 파는 옷이 가격도 싸서 실컷 쇼핑을 해도 큰돈이 들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이 옷 저 옷, 그러니까 입지도 못할 옷까지 사 온다는 거였다.
목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 튀어나온 트레이닝복도 한 두 벌이라면 모를까 열 벌 이상 있다면,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옷을 쌓아놓을 곳이 없어 아버지 몰래 헌옷들을 한 짐 싣고 다시 벼룩시장에 가져다주었다고 친구는 씁쓸하게 말했다.
“너무 절제하는 것도 안 좋은 거 같아. 결국 어느 시기가 되었든 간에 그러한 욕망은 남아서 어떠한 형태로든 풀게 마련이잖아.”

억눌렀던 욕망, 다시 나타난다
어느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아주 자연스런 바람이고 욕망인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억지로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 같지 않다. 결국 어느 시기, 상황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풀게 마련이다. 반드시 한 인생에 채워져야 할 어떤 부분들이 대가없이 건너 뛸 수는 없는 것 같다.
친구의 아버지는 아마 ‘은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쳤던 ‘자기절제’의 한 부분이 무너진 게 아닌가 싶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너무 희생하고 억누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반드시 어느 시기가 되면 억눌렀던 욕망들은 다소 엉뚱하게, 혹은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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