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열 시간 떨어진 곳을 가려면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 탑승을 위해 수속하는 두어 시간, 도착지 공항 통관,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합해 15시간이 걸린다. 혜영 씨는 20년 이상을 엄마와 이만큼 떨어져 살다보니 어쩌다 한 번씩 만나서 얘기하듯 마음먹고 긴 통화를 하게 된다.
엄마와 통화해야겠단 마음을 먹는 것은, 어떤 주제를 꺼내든 경험을 살려 삶의 지혜로 객관화하는 엄마의 스토리가 때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날도 중년기의 혜영씨가 삶이 복잡하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혜영: “엄마~.”
엄마: “지난 주에는 아무도 연락이 없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젊은이들이 바쁘게 사는데 내가 하는 일없이 전화오기를 자꾸 기다리는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혜영: “우리가 전화할 때 엄마가 못 받을 때도 있지만 요즘은 좀 복잡했어요. 3년간 투병해온 젊은 환자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지인 결혼식에, 어린이집 학부모들 교육 세미나까지 하다보니 울던 얼굴 닦고, 밝은 모습을 하는 게 힘들더라구요.”
엄마: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단다 한 편에선 떠나가고 다른 한 편에선 태어나고 그 애들 보며 웃고 가르치려 애쓰고 그러다 늙고 아프고. 생로병사는 한사람의 일생이기도 하지만 늘상 어디선가 함께 일어나는 거란다. 여러 사람에게 생기는 일이 한꺼번에 보일 때는 그렇게 크게 느끼게 되는거지. 어려운 주간을 보냈구나.”

진실된 삶을 살아내기 위한 노력
혜영: “젊은 애들 엄마를 떠나보내며 그동안 병석의 고통을 안 봤다면 가족들의 슬픔과 서운함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봤어요. 환자 자신도 고통으로 신음하며 '이제 가고 싶다'고 했고 그걸 지켜보던 가족들도 이제 하늘에 가서 맘대로 걷고 날아다니라고 했으니까요. 고통이 이별에 위안을 준 셈이죠. 그것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는 사람에게도 고통은 역시 위안이 된다는 걸 깨달았지요. 이 땅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고 심한 고통의 길을 바로 넘어갔다는 의미에서요.
엄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진실된 삶은 앞뒤가 같도록 노력하는 것이니까.”
혜영: “이건 다른 얘긴데요, 사람들이 남 앞에서와 뒤에서 너무 다른 행동을 하며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하는걸 보면 안타까워요.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잇다는 걸 모르는 거 같아요.
엄마: “나는 내 욕심을 위해 사람들이 모를 일을 한 적이 꽤 있단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사람들은 내 겉만 보고 좋은 말들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란다.”
혜영: “그건 노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도라고 여겨지네요. 진실되지 못했다는 회개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고백이라 생각돼요. 엄마 정말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엄마: “그러면서도 이렇게 살아온 게 감사할 뿐 이란다. 우리 시대는 전쟁으로 싸움으로 정말 어려워 살기위해 옳지 못한 일을 하기도 했지. 그러니 지금 사람들은 너무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옳게 살 수 있다고 본다. 감사하며 좀 내려 놓으며 살려무나.”
혜영: “네 알겠어요. 엄마.”

전영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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