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꼬불꼬불한 산길이 익숙했나봅니다. 오르막길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앉은 좌석 손잡이를 놓쳤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승객이라고는 서너 명. 기름 값도 나오지 않는 시골 버스의 먼 길.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버스는 날개 단 듯이 달렸고 버스천장의 손잡이는 미친 듯이 춤을 추었습니다. 저는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좌석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껴가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마치 비를 맞으며 그리는 수채화 같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한숨을 내 쉬기도 전에 마중 나오신 목사님의 차를 타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을 또 달려 드디어 공동체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멱살 잡혀도 포기할 수 없는 일

마을 논길을 지나 산언저리에 닿았을 때 하얗게 지어진 예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공동체에 도착했습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새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건물 주변의 아름드리 감나무들은 허리가 휘어지도록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고, 작은 고추밭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은 평화를 노래하듯 흘렀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건물 뒤편으로 발길을 향했을 때 십자가 동산이 나타났습니다.

그 동산 아래로 보이는 공동체 풍경은 고즈넉한 평화의 동산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띄엄띄엄 지금까지의 사역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정외과를 나오신 목사님은 얼마든지 세상 성공의 길로 가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보다 존재를 중히 여기고 성공보다 향방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목사님은 많은 사역들 중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사역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다.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내딛은 사역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멱살 잡히는 일이 다반사였고, 때로 휘두르는 주먹에 위협을 느끼는 날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금주를 잘 감내해오던 중독자들이 어느 날 마신 술 한 잔에 폭군으로 돌변해 그 뒷감당해 내는 일들로 곤욕을 치르는 날들도 많았던 것이지요.

‘3無사역’

목사님의 가정은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사역에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슬하에 따님은 그런 아버지를 늘 아프게 지켜 봤다고 합니다. 고된 사역의 아버지가 안쓰러워 차마 곁에서 보긴 힘들다며 딸은 멀리 유학을 떠났고, 이제는 한국에 들어오기를 기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을 하는 아버지를 생각만 해도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는 착한 딸. 따님에겐 한국에서의 사역이란 늘 눅눅하고 고달프기만 하게 여겨졌던 것이지요. 목사님은 따님 얘기에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숫한 눈물의 고비를 포월(胞越)하며 살아오신 목사님. 목사님의 사역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오래 전에 들었던 ‘3無사역’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돈 없이, 사람 없이, 건물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목사님은 정말 ‘3無 사역’으로 지금껏 달려오신 사역자이셨습니다.

그렇게 매일 전쟁을 치르는 듯한 사역을 통해 목사님의 사역의 깊이와 성숙의 무게는 더해갔습니다. 그런 목사님의 사역을 위로하듯 하나님은 좋은 터와 아름다운 건물,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들을 허락하셨고 목사님은 이젠 ‘3無’사역자가 아닌 ‘3有’사역자가 되셨습니다. 더욱 전문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을 가라시면 응당, 순종해야지요!”라고 말하십니다.

공동체를 둘러본 후, 제 입에서 떠나지 않는 한 노래가 있었습니다.

“다 버리면 다 얻으리. / 그 또한 버리리. / 예수님 한 분만.”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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