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엄마 병실에서 재잘거리며 기분이 좋아진 은영이가 집에 오는 길에 묻는 말이었다.
"글세…. 갑자기 왜?"
"할머니, 저는 화가가 되고 싶은 꿈도 있고 엄마랑 여행하고 싶은 꿈도 있어요. 그리고 같이 놀이동산 가는 거, 그냥 동네 산책하는 것도 꿈이에요."
점점 목소리가 작아진 은영이는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 그게 지금 꿈이에요."라고 말했다.
병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여행, 나들이, 함께 걷기를 접어두고 그냥 옆에서 한 밤을 자고 싶은 게 아홉 살짜리 딸의 실제 꿈이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생각해 보자."
아무래도 추석이 되면 병실 침대가 비게 되지 않겠나.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남아야 하는 환자들 외에 새로 입원할 사람들은 명절 하루라도 지나서 들어오지 않겠나.
"할머니, 그럼 엄마 옆에서 잘 수 있어요?"
은영이의 목소리가 날아올랐다.
간호실에 물으니 마침 바로 옆 침대가 하루 빈다고 했다. 

꿈이 이뤄지던 밤
엄마 옆 보조 침대에서 은영이가 자고 옆 침대에서 아빠와 동생이 자기로 했다.
잠옷, 동화책, 그림일기를 가방에 넣으며 은영이는 "유년부 수련회 가는 거 같다"고 했다.
동생 찬이도 "가서 떠들면 안되지? 난 공부 할거야" 라며 색칠할 공책과 색연필을 챙겼다.
매일 밤 엄마를 지켜온 아빠가 이날은 아이들까지 세 명을 돌보게 된 것이다.
집에서 모두들 샤워하고 간식거리를 챙겼다.
엄마가 송편 한 개는 먹을 수 있을까? 지짐이도 한 개, 식혜도 한 병…. 네 식구가 한 공간에서 자는 게 몇 달만 인가. 아이들은 들떠 부풀었다. 병원 가는 길에 은영이가 또 꿈 얘기를 했다.
"이 꿈은 소원을 말하는 꿈이 아니고 밤에 자면서 꾼 꿈인데, 엄마가 건강해져서 우리랑 같이 노는 꿈이었어"
그동안 암과 투병하며 올 겨울만 잘 치료하면… 올 여름만 잘 넘기면… 하면서 얼마나 믿음과 소망을 가져왔던가!
그러기를 벌써 4년째. 처음에는 잠도 안자고 울던 아이들, 밥도 안 먹고 보채던 아이들이 이제는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려 상도 받아 올 만큼 자란 것이다. 그 밤, 아이들은 잠들기를 아까워하며 함께 기도하고 재잘대다 밤늦게야 곯아 떨어졌다. 아침 늦게까지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엄마는 바라보았다.
은영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한테 말했다.
"아까 엄마 옆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자는 척 했어. 그냥 그렇게 오래 있고 싶어서…. 그리고 아빠 내 꿈을 하나는 이루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 그렇지?"
그림을 잘 그리는 은영이가 화가의 꿈을 이룰 때, 그토록 원했던 엄마와 함께 한 이 밤이 어떻게 기억될지….
네 명의 가족이 함께하는 작은 꿈을 이루던 밤, 은영이는 그 행복을 어떻게 표현하게 될까.

전영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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