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난 시각은 새벽 5시. 씻고 부지런히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멀리 충북 옥천에 위치한 한 공동체,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작은 공연 때문입니다.
“무궁화호!” 추억의 옛 기차를 타는 듯 들뜬 기분으로 새벽에 가을 여행을 떠났습니다. 차창 밖 풍경은 여전히 캄캄했고 승객들은 덜컹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덜 잔 잠을 잡니다. 차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시간 속 여행자인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동대구역을 지날 즈음, 푸르스름한 빛깔에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해는 자신의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었지만, 저 너머로 푸르스름한 신비로운 빛을 이곳으로 먼저 보내어 칠흑 같은 어두움을 천천히, 아주 조금씩 밀어 내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얼굴빛을 상상해 봅니다.
“내가 정말, 그분이 말씀하신 빛이라면… 나는 지금 여기 있어도, 지금쯤 내가 도착해야 할 그곳에 푸르스름한 신비로운 빛이 당도해 그곳의 어두움이 밀려가고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밝아 오는 듯합니다.

‘침묵’의 가능성
어느새 하루가 시작되고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5시 방향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빛의 이유는 어둠을 밝힘보다 고유의 빛깔을 드러내는데 있다’던 한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맑고 밝은 아침 햇살에 세상 풍경이 제 빛깔로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신께서 지으신 ‘하루’라는 선물이 세상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옥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상쾌한 아침, 플랫폼에 내리쬔 아침햇살을 잠시 누리며 대합실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화장실 벽의 한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움직일 침묵이 필요하다.”
마더 테레사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제 마음에 콕 박혀 왔습니다. 제 노래의 여백이 영혼을 움직이는 ‘침묵’의 가능성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직 목적지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내려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또 들어가야 합니다. 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30분 동안 정류소에서 기다려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돌아가는 산길을 30분가량 달렸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은 노래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를 알게 했습니다.
그 길을 달리는 동안 유난히 주렁주렁 환하게 달려 있는 감나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게다기 감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새벽부터 길을 나선 저를 반기는 세리머니 같았습니다. 문득, 이등병 시절, 군 교회 주보에 실린 한 편의 시에다 붙인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잎이 지고
열매들만 남아서
나무들이 보여주는
당신의 뜻을
이 가을에도
눈 있는 사람 보게 하소서

내가 당신의 한 그루 나무로 서서
잎만 무성하지 않게 하시고
내 인생 추수기에
따 담으실 열매가
풍성하게 하소서

-최진연 ‘이 가을에도’-

(다음호에 이어서)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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