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도 개 ‘유코’가 짖었다고 아내가 걱정을 합니다. 거의 매일 새벽마다 개짖는 소리로 빌라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요. 공동주택에서 몸무게가 15kg이나 나가는 ‘코커스파니엘’ 종 개를 데리고 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개를 지켜야할 사정이 있습니다.
얼마 전 교회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올 해 마흔 다섯이신 집사님은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듣고 오늘 예약된 병원에 갈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후 폐암 4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미 척추와 주변 장기에도 암이 전이되어 집사님은 장기 치료를 위해 퇴원을 했습니다.
그 집에 찾아가 집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 개는 집에서 키우지 말라고 했지만 당장 개를 맡길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맡을 사람이 여의치 않아 심방 후 저는 ‘유코’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들었던 ‘유코’를 떠나보내는 집사님 식구들은 많이 서운해했고 ‘유코’ 역시 왠지 측은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유코’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우리 식구들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성도들과 동행하는 목회자
예기치 못한 손님이 집에 들어오면서 우리 집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변 이웃의 눈치를 살피고, 집안에서 키우기에는 꽤 큰 ‘유코’를 감당하느라 온 식구들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을 나와 교회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소리에 예민해 밤잠을 설쳐 결국 교회 사무실로 피난을 나온 겁니다.
그렇게 변화를 겪으며 저의 목회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에 대한 섬김은 어디까지여야 하나…?’
언젠가 교회 앞에서 이렇게 선언한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함께 있고 싶습니다. 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곁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목회를 접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 고민의 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라면 지키셨을 그 자리에 저도 있고 싶습니다. 개로 인한 불편함과 부담스러움은 다시 한 번 목회자의 역할과 자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성도들과 동행하는 것이 목회자일 것입니다. 동행이란 곁에 있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눈물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이 우리들의 약함과 아픔에 동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삶의 현장
어제는 ‘유코’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치료중인 집사님의 집 근처를 지나는데 ‘유코’는 어느새 집사님 집 문 앞에 다가섰습니다.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유코’가 목회자인 저에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왜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알지 못할 ‘유코’가 집 앞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그럼에도 자기 집과 그 주인을 잊지 않는 ‘유코’를 보며 목회자인 제게 맡기신 모든 성도들의 삶의 현장, 그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때론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어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더라도 말입니다.
성도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젠 개뿐 아니라 고양이, 돼지도 감당하고픈 마음입니다.
갑작스러운 낯선 손님인 개 ‘유코’와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집안 가득한 개 냄새도 이젠 적응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 듣고 친근하고 귀엽게 구는 ‘유코’가 언젠가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기뻐할지 서운할지 궁금해 하면서도,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려보낼 그 날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김관선
주기철 목사, 조만식 장로, 장기려 박사 등을 배출한 역사 깊은 산정현교회 담임목사. CBS TV ‘산정현 강단’을 맡고 있으며 다양한 신문과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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