⑯ 존 서머빌 선교사

저녁을 먹고 존 서머빌 선교사(한국이름 ‘서의필’)를 만나러 갔다. 서머빌 선교사님을 만나러 가면서 우리는 몇 가지 상상을 했다. 하버드에서 박사를 하신 최고의 지성, 한국어와 한자를 자유자재로 쓰신다는 분. 왠지 마르고 예리하며 어딘지 철학자다운 면모를 가지셨을 것만 같았다.
산 속에 있는 선교사님의 집은 조용하고 옛스러웠다. 선교사님은 문 밖으로 마중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를 환영하셨는데 얼마나 우리를 열열이 환영하시는지 우리가 상상했던 냉정한 철학자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졌다.
문을 열자마자 식당이 나왔고, 식당에는 다양한 한국 물건들이 있었다. 1870년대 평양 지도와 목포 유달산 그림 등 박물관에서나 있을 법한 진귀한 물건들이었다.

한국행 결심하게 된 동생의 죽음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서머빌 선교사님은 식당과 거실에 있는 그림들을 일일이 소개해주셨다. 평양 지도를 보면서 평양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광주에서 발굴한 오래된 도자기도 보여주셨다. 또한 자신의 뿌리인 이민사도 설명해주셨다. 우리는 선교사님이 한자도 잘 아시고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셔서 매우 놀랐다.
서머빌 선교사님은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인은 무진년 생이라고 하셨는데 정작 우리는 몇 년 생인지 언뜻 감이 잘 오지 않았다. 1928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서머빌 선교사님은 올해로 84세다. 그의 아버님은 목사님이셨는데 버지니아에서 목회를 하시다 큰 아들의 건강문제로 지금의 사역지를 옮기셨다. 8남매 중 6번째 아들로, 선교사님이 태어난 해, 미국은 대공황이 시작되어 많은 실직자와 가난한 가정들이 생겨났다.
어릴 적 아버지는 우리는 돈이 없어 대학을 갈 형편이 안되니 늘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형제 모두는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선교사님은 가난을 삶으로 체득한 자신의 경험이 선교현장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선교사님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화학과 신학 두 분야를 고민하며 기도했다. 결국,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조지아 컬럼비아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학기 중, 선교단체에서 젊은 사역자가 필요하단 말을 듣고 선교사로 지원하게 되었다.
한국에 오게 된 특별한 이유는 동생의 죽음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 때 참전한 동생이 죽은 것이다. 한창 어디로 갈지 고민 중에 있던 시기, 동생의 죽음은 한국에 가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선교지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다가 그때부터 한국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1954년 2월 한국으로 도착해서 목포에서 5년간 사역을 했다. 그때 동갑인 한국어 선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국어를 익혔고, 주말이 되면 주변에 전도하러 다녔다. 그는 더 한국을 알기위해 안식년 기간에 성균관대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했고, 후에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특히 신경 쓴 것은 한자였다.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한국을 알 수 있기에 한자 배우기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궁금했다. 선교사님은 선교는 선교 받는 대상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그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하면 좋은 선교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한국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되었다고 했다. 목포생활을 접고 한남대학교를 세울 때 합류하여 좋은 기독교 학교가 되도록 매일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르치는 일을 했다.
 멘토로서 많은 걸 주고 싶었기에 많은 시간을 한국 학생들과 보냈다. 시대적으로 암울한 시기였기에 선교사님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주어진 것을 슬퍼하셨고, 인권위원회의 일환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경찰서를 다니시며 일하셨다.
선교사님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셨다. 억압받았던 한국의 상황과 학생들의 고달픔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학생들을 위해 늘 기도하셨고 그들의 석방에 노력하셨다고 했다.
예기치 않게 인터뷰가 다른 이야기로 흐를 때가 있었다. 인터뷰를 하며 서머빌 선교사님이 가끔 깜빡깜빡 하신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한국에 대한 헌신과 배우고자하는 의욕과 열정은 잊지 못할 것 같다.

한병선
‘한병선 영상만들기’ 대표로 영상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영상자서전 작업과 각 단체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동행에 소개된 ‘제3세대 선교사이야기’가 ‘이름 없는 선교사마을 블랙마운틴을 찾아서’(홍성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책에 담긴 인터뷰는 현재 영상으로 제작중이다.
joyhan3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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