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헤맨 길은 다음에 갈 때도 헤매기 마련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이 물어본 길일수록 더 그렇다. 가야되는 곳의 방향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들, 예컨대 간판의 이름, 길가에 심겨 있는 꽃이나 나무, 대문의 색깔, 혹은 평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특징 같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길치’가 길을 못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길치는 대개 ‘직진해서 우회전하면 사거리가 나와. 그리고 3시 방향에 00빌딩이 보일거야’라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옆면이 찌그러진 하늘색 입간판이 보일거야. 평상이 있고. 거기에 가끔 고추를 말려놓기도 하는데. 그 옆으로 가다보면 누런 개가 있는 녹색 대문이 나와’라는 식이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진땀이 난다.
사실 난 무척 심각한 길치여서 새로 가는 길엔 늘 긴장한다. 두 번째 가는 길이면 더 나을 것도 같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 아닌 이상 약도나 가는 방법을 적어놓지 않으면 또 다시 새로워지고 만다. 스스로 무척 한심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주변 사람에게 미안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치’의 길
하지만 ‘길치’에게도 자신 있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리고 ‘길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길도 있다.
난 이제껏 한 동네에서 태어나 계속 살았다. 서너 번 이사도 다녔지만 인접한 곳이라 행정구역상 ‘동’ 이름만 바뀌었다 뿐이지 한 동네라 할 수 있다. 학교도 걸어서 통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골목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어떤 길에 들어서면 조금 긴장을 해야 한다. 녹색 대문 가까이 걸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집엔 언제부터인가 누렁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걸을라치면 어김없이 개는 사나운 기세로 대문 아래 틈으로 주둥이를 밀어가며 으르릉 을러대고 짖어댄다.
그늘 있는 길로 가려면 버스 정류장 가기 전 횡단보도에서 미리 건너야 한다. 은행 앞에 서 있는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신문 구독을 권유하는 분이다. 베이커리 유리문이 밖으로 열리기 때문에 바짝 붙어 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또 다른 즐거움
그뿐인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지름길도 알고 있다. 신호도 없고 차량도 많지 않아 한적한 도로다. 그러나 그 도로 옆은 걷기엔 편하지가 않다. 보도블록이 고르지 않아 발밑을 살피며 걷지 않으면 발을 삘 확률이 매우 높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길이 좋은 곳도 있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심겨져 있는 길이다. 길옆엔 운동기구와 놀이기구가 함께 설치돼 있는 놀이터도 있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그네를 태우고 노부부가 운동기구를 이용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풍경이다.
놀이터 앞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뒤로 조금만 걸어가면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하드 30% 세일’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있는 곳이다. 거기서 음료수라도 하나 사 들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으면 기분 전환에 그만이다.
물론 ‘길치’만이 동네나 골목 속속을 더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밑을 보기 때문에, 대문 뒤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표정을 살피기 때문에 (그래서 길치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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