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보이어 ‧실비아 보이어 선교사 Kenneth Boyer‧Silvia Boyer

우리는 오후에 선교사 은퇴촌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는 케네스 보이어(한국명 ‘부계선’), 실비아 선교사님 댁을 방문하였다.
두 분은 우리를 위해 거실에 선교 사역 자료를 꺼내 두셨다. 사실 우리는 두 선교사님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지 못하고 간 상태였다. 순천에서 사역하셨던 아버지 보이열 목사님도 알지 못했고, 목표에서 사역하신 케네스 보이어 목사님에 대해서도 거의 정보가 없었다. 사역한 시기가 한국선교 초장기가 아니라 1920년대 무렵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싶다.

하루 수 백명 환자들 돌봐
케네스 보이어 목사님은 보이열(E. T. Boyer. 한국이름은 '보이열')선교사님의 아들이다. 아버님인 보이열 선교사님은 교육선교사, 복음전도사, 의료선교사로 1921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40년 동안 전주와 무주, 순천에서 사역하셨다.
그 분의 주 사역은 농촌순회선교였다. 순회선교란 목회자가 없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지속적으로 돌보는 사역을 말한다.
 보이열 목사님은 초기에 전주 신흥학교와 순천 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일본이 한국 내의 선교사들을 쫓아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해방 후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 순천 애양원에서 윌슨 선교사님 후임으로 원장을 지내셨다. 그리고 사역 후기에는 대전지역을 위해 일하시고, 사역말기에는 남원지역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자립마을을 만드셨다.
케네스 목사님과 실비아 선교사님은 각각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가 만나서 결혼한 케이스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한국선교에 헌신한 분들이다.
남편인 케네스 보이어 목사님은 한국 전주예수병원에서 1930년 태어났다. 한국에서 자랄 때가 2차대전 발발 직전이라 미국 국무성의 권고로 귀국했다. 1957년 다시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사역하다 지금의 부인 실비아 선교사님을 만났다. 실비아 선교사님은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했으며 대학병원에서 일하다가 1959년 한국에 오게 되었다. 각자 사역을 하던 두 선교사님은 1961년 광주에서 결혼하셨다.
부부는 결혼 후 섬을 다니며 병원을 열어 아픈 이들을 치료했다. 하루에 1~200명씩 환자를 돌보면서 기생충 퇴치운동?소아마비 예방접종 등의 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열정으로 사역하던 아버지 생각에…
케네스 선교사님은 목회자가 없던 제주도의 교회들을 섬기고, 사역자를 세우는 등의 사역부터 사진 촬영과 영상제작까지 다양한 일을 하셨다. 정말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아버지만큼은 할 수 없어 늘 부족함을 느낀다고 케네스 선교사님을 말씀하셨다.
아버지인 보이열 선교사님은 농촌 순회 전도자로 6주에 한 번 집에 오며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를 섬기러 다니셨다고 했다. 65개의 교회를 섬기느라 발톱이 모두 빠졌을 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사역을 다니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자신은 아버지를 따라 사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선교사님께 한국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인지 여쭈었다. 두 분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때문에 사역이 힘들지 않았고 행복했었노라고 대답하셨다. 케네스 선교사님은 1980년 27년간의 한국 선교사역을 마치고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지금의 한국교회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다. 사실 이 분들이 느낀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미국의 나쁜 습관들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 미국 영화 등을 통해 우리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을 보고 배웠다. 이제 한국에는 예전과 같은 고난이 없을 것이다. 삶은 훨씬 편안해졌다. 아마도 그래서 깊은 신앙심보다 그저 대중적인 활동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몇 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한국이 평화롭게 하나가 되기를 기도해 왔다. 또한 교회가 한반도 전역에서 활성화 될 수 있게 하는 정부가 세워져 한국이 진정한 기독교 국가가 되기를 기도해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세계에 퍼져있다. 내 기도 제목은 그들이 일상에서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국가에서 사업이나 어떠한 일을 하던지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두 분과 함께 우리는 기도했다. 두 분은 우리의 사역과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기도를 들으면서 우리는 펑펑 울었다. 그분들의 한국을 향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었다.

한병선
'한병선영상만들기' 대표로 한국의 3세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는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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