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교회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교포 여성이 적고 있듯이 진짜 교회인지 가짜 교회인지는 북녘 땅에서만 해야 할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의 탈을 쓰고 있는 세상의 모든 교회들’과 ‘내 마음의 성전’을 향해서도 던져야 할 물음입니다.
오늘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에 터하여 세상에 널리 번져 있는, 그리고 교회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가짜’를 들추어내고, ‘거짓’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가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기를 쪼개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삶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판별해야 한다는 그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가르침으로 세상의 ‘가짜’를 보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에 드리워진, 아니 교회에 젖어든 ‘가짜’를 들추어내고, ‘거짓’을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나’ 또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가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기를 쪼개어 열어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움입니다. 
‘가짜’와 뒤범벅이 된 세상의 위선과 맞장구를 쳐야만 득세도 하고 유명세도 타게 된 이 비천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맞장구를 치며 살아가는 것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소리가 빗발치고 있는 이 애처로운 세상에 우리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현실’이라는 것을 거들먹거리며 내세우는 저 비굴한 논리의 덩어리를 모조리 부수어버리고 ‘현실’이라며 언죽번죽 감싸며 편들고 나오는 저 알량한 억지 정당화의 밑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파괴합니다.

‘진짜’는 ‘가짜’와 공존할 수 없다

‘가짜’가 득세할수록 ‘진짜’는 더한 수난을 겪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값이 드러나는 곳이 여기입니다. ‘가짜’가 횡행하는 시대에 ‘진짜’를 내세우고자 하는 삶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며 세상의 비웃음을 받고 헐뜯음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참’과 함께 하고 ‘참’을 향해 가는 길이 외롭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겉’발림을 일삼는 추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의 진실성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며 삽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단호합니다. 아무리 외롭고 어렵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사람은 속되고 천한 사람들처럼 ‘가짜’와 덥석 손잡지 않고 ‘가짜’와 선뜻 어깨동무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본문에서 읽듯이, 하나님의 뜻하심을 따르는 삶에는 그가 함께 하십니다. 하여 우리는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알랑쇠로 살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중이떠중이처럼 ‘가짜’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뭐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가짜’와 ‘위선’의 세력과 맞붙어 싸우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 뻔뻔스런 착각입니다. 우리가 한없이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여, 그에 힘입어, 그의 힘에 기대어 거짓된 세상을 뚫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 묵상’ 그 한 글귀처럼, “하나님, 내 손에 힘을 주십시오” 하고 우리는 또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는 ‘겉’과 ‘안’이 다른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진짜’인양 하며 뻐기는 자들의 ‘가짜 됨’을 폭로하며 가혹하게 나무라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안’의 진실성

실체는 ‘겉’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안’을 두루 살피지 않은 채 ‘겉’만 보고 세상의 뭇 교회가, 남녘의 교회가 ‘진짜’ 교회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겉’만 보고 섣불리 북녘 교회가 ‘가짜’라고도 말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알고 모르는 사이에 세속의 논리와 가치에 흠뻑 빠져 그것에 사로잡힌 자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어리석음이자 서투른 오만함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는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들림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모두 겸손하게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향하여 깊은 물음을 던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그 마지막 날에는 북녘, 남녘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하늘의 잣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짜’ 교인으로 살았는지 ‘진짜’ 교인으로 살았는지, 자신의 ‘겉’ 모습이 아니라 ‘안’이 어떠했는지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은 그날을 위해,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내’가 ‘회칠한 무덤’은 아닌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라는 꾸짖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닌지, 말씀에 기대어 스스로를 살피고 서로 격려 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안’의 진실성 때문에, 그 진실성의 강렬함 때문에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말씀의 증인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의 품위입니다. 

박영신
사회학자. 평생 연세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명예교수이다. 10여 년 동안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지냈고, 요즈음은 ‘탈핵운동’을 진지하게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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