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애…. 5층 병실임을 확인하고 우리는 병실 문을 열었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지 이순애 님은 보이질 않고 ‘이순애’라고 쓰여 있는 묵상노트와 성경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악기를 내려놓고 잠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때 옆 침대 환자분께서 “이순애 님은 성격이 밝아 4층, 7층 호실에 자주 다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한 벗님이 이순애 님을 찾으러 위층 아래층을 돌아보았지만 이순애 님은 20여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뜻밖의 상큼한 제안

이순애 님은 지난 번 저와 함께 말기 암 환자를 위한 작은 공연에 함께 하셨던 착한 벗님이십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요. 이순애 님은 근래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한동안 병원 생활을 하시다가 퇴원하셨는데 갑자기 가슴에 심한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 결과 유방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수술이 잘 진행되어 우울함 없이 요양 중이길 바라며 깜짝 놀라게 할 생각으로 연락도 없이 불쑥 병실을 찾아갔습니다.
주변의 “성격이 밝다”라는 말에 수술이 잘되셨나 보다 싶어 마음을 놓고 있는데, 갑자기 이순애 님 침대에 어떤 낯선 분이 오신 겁니다.
‘어, 이 자리는 이순애 님 자린데….’ “저, 이 자리는 이순애님 자린데요.”라고 했더니 생전 처음 보는 그 분이 “제가 이순앤데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우리는 당황했고 급히 문자를 보내 확인하고 보니 동명이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순애 님은 오전에 퇴원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우리는 바람 빠진 타이어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순애 님은 환하게 웃으며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순애 님을 위한 작은 공연을 하러 왔다는 대답에 동명이인의 이순애 님께서 “저도 이순앤데요! 그럼 저를 위해 찬송 불러 주시면 안돼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상큼한 제안이라고나 할까요.
이순애 님의 눈빛은 해맑다 못해 애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때마침 그 분의 남편 분이 병실에 들어오자, 함께하던 벗님이 “어, 편이다”라고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그러자 화답한 “네, 순애편이예요!”라는 남편의 센스 있는 한마디가 순식간에 병실 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병실 안은 마치 지저귀는 작은 새소리들로 가득 한 듯 했습니다.

예비된 콘서트

유쾌해진 분위기에 우리는 다른 이순애 님을 위한 아니, 이순애 님을 위한 콘서트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순애 님은 유방암으로 얼마 전 가슴 한 쪽을 도려내시는 큰 수술을 하셨습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성경과 묵상노트가 지금의 심경을 잘 드러내 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옆 침대에 계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해 주실 것을 권하면서 우리는 하늘 평화를 노래하기 시작 했습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깊은 기도의 시간을 마치고 함께 노래로 동참해 주신 우리 벗님이 이순애 님께 뚜벅뚜벅 나아가시더니 가냘픈 소녀를 사랑으로 껴안듯 꼭 앉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손 안에서 우리는 든든했고 주님의 눈길 안에서 우리는 평안했습니다.
그 순간, 이순애 님은 웃음으로 감추고 있던 눈물을 봇물처럼 터트리시고는 한참을 서서 벗님의 품에서 우셨습니다. 문 밖에서 서 계시던 순애편 님이 들어와 사랑하는 아내를 꼭 안아 주셨지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자신도 안아 달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의 벗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빼놓지 않고 꼭 껴안아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병실 문밖에는 5층에 계시던 환우 분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간호사들까지 함께 이순애 님을 위한 콘서트에 동참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날 다른 이순애, 아니 이순애 님을 위한 콘서트는 5층에 계시는 모든 분들을 위한 아름다운 콘서트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일하시는구나 싶었지요. 찬송이 끝나고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온 한 형제요 한 자매인양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병실 문 밖을 나설 때의 이순애 님의 함박웃음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지나간 모든 것을 감사하고 다가올 모든 것을 긍정하는 듯 그 평안했던 얼굴이 그날 우리들의 발걸음을 얼마나 가볍게 해주었는지…. 사랑은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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