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미 브라질 아마존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의 소천 소식과 함께, 그의 삶과 열정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웠는지를 알려주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상의 제보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중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브라질 이민을 떠난 가난한 소년이 조선일보 장학금으로 상파울루국립의과대학을 다녔고, 의사가 되어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들을 돌보며 온 삶을 불살랐던, 그야말로 아름다운 열정의 사람…. 등등의 제보였습니다.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고 그분 주변의 인물들을 접촉하고 그의 선교사역 자료들을 살폈습니다. 유리에선교사와의 인터뷰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헌신이 어떠한 것인지 충격이 되어 가슴을 울렸습니다. 아마존의 슈바이처였던 안승렬 선교사가 바로 그분입니다.

그의 아내 마가렛 유리에선교사는 일본계 브라질인입니다. 음악을 전공한 아리따운 여성이 선교의 꿈을 꾸고 있다가 청년 안승렬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멋진 두 아들을 두었고, 또 사역지에서 두 딸을 입양한 특별한 가족입니다. 그들의 삶, 그들의 삶 속에는 “오직 예수!” 외에는 설명 할 길이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 미망인 유리에 선교사는 남편의 뜻을 이어 아마존에 남아 원주민들을 섬기며 아이티 난민을 돌보고 있다.

오직 ‘작은 예수’로 살다

안성렬 선교사는 꼭 52년을 이 땅에 살다 갔다. 열정의 비전 메이커로 불꽃처럼 살다 갔다. 2010년7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동분서주 쉬지 않고 일하다가 재발되어 2차 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 중 췌장암으로 3차 수술을 받다가 5월31일 세상을 떠났다. 길지 않은 삶이지만 열정으로 불꽃 튀기는 시간들이었다.마지막까지, 병원과 사역지를 오가며 죽음을 앞에 두고 사투를 벌이던 때 지인들에게 보낸 몇 차례의 편지에서조차 자신의 건강보다는 아마존 원주민들과 그 사역들과 아이티에서 이주해온 난민들과 신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한센병 환우들…. 오직 사역에 대한 관심과 기도, 그리고 부탁과 격려로만 가득했다.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살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다 드리고 산화하듯이 떠난 한 영혼의 삶의 노래는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그의 삶이 너무나 열정적인 섬김이었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아마존에서 뿐만 아니라 아이티에서, 그리고 상파울루와 미국과 한국의 동역자들에겐 참으로 상실의 날, 슬픈 날이었다. 그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이다. 온 삶을 바쳐 실천한 안선교사의 ‘조건없는 사랑’은, 그가 만난 예수님이 조건없이 사랑해 주셨음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누구든지 돌보고 섬겼다. 마치 작은 예수처럼.

유쾌한 ‘비전 메이커’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고교 3년생 안승렬은 경제사정으로 대학진학을 고민하던 중, 강성철 선교사의 주선과 추천으로 조선일보 장학생이 되어 무사히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문의가 되어 의사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다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리라 결심하고 상파울로 외곽의 빈민가에서 진료소를 만들어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았다. 의과대학 재학시절에는 의과대학의 빡세고 고단한 공부에도 불구하고 야간에는 음악대학에 다니며 자신의 재능을 길렀다. 교회에서는 꾸준히 성가대를 지휘했다. 또한 신학교에서 선교사 훈련과정도 마쳤다. 또한 육신만을 돌보는 사역자보다 그들의 영혼을 구하는 사역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와서 총신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사역지로 돌아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아세아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과정도 마쳤고 GMS 선교훈련을 받고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브라질로 파송 받았다.

불꽃 튀는 그리스도 사랑과 열정에다 이런 놀라운 ‘스펙’을 가지고 아마존으로 들어간 안승렬선교사 부부의 사역은 눈부시기 그지없었다. 안선교사 부부의 아마존 사역은 참으로 활발했고 역동적이었다고 동역자들은 이구동성 이야기 하고 있다. 병원선을 타고 정기적으로 아마존 강변 마을 곳곳에 들어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고, 그 회심자들을 위해 교회를 여러 곳에 개척했다. 또한 아마존 수백 부족 수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세웠다. 신학교로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양육하고 세우는 재미에 푹 빠져 늘 행복해 하는 선교사였다. 한국어 영어 포어 스페인어에 능통하여 신학생들에게 필요한 서적을 틈틈이 번역하여 폴투갈어로 번역해내는 실력과 열정은 따르기 조차 어렵다. 안선교사는 늘 남들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돋우며 긍정적이고 유쾌한 ‘학장님’이자 의사선생님이자 그들의 비전 메이커요, 발을 씻어주는 진정한 섬김의 모본이었다.

눈부신 사역, 역동적 사역

교회개척과 신학교사역, 진료소 사역, 학생들 상담과 지원에, 각 부족어로 교재를 번역하는 일,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 유치원 사역….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도 그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부름’을 받으면 달려가고야 만다. 아이티 대지진참사가 났을 때, 건물 더미에 묻히고 갇혀 몸이 찢기고 뜯기는 아우성의 소식을 듣고 보며, 조금만 도와주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아도 되는데 의료진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하여 한달음에 아이티로 달려갔다. 아이티의 참혹상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성품이었다. 달려가 그들의 고통을 감싸안아주었다. 치료하고 위로하고 돌보는 일을 거침없이 감당했다.

브라질과 지리적으로 멀지않아서인지 아이티 사람들은 브라질로 피신해 왔고 특히 아마존으로 수천 명이 이주해 와서 안선교사의 집은 아이티 사람들의 난민촌이 되고 말았다. 유리에 선교사는 매일 100-150여명의 식사를 감당해야 했고,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돌보는 일에서부터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까지, 온갖 필요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이들 부부는 자신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안 선교사네가 살던 선교관에는 아이티 난민들 2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유리에의 손길이 없어서는 안되는 주 사역지가 되고 있다. 동역자들이 없지 않지만, 너무나 사역이 역동적이어서 한 순간도 마음을 쉴 수 없는 숨가쁜 현장이다. 이렇게 사역하다 남편 안승렬 선교사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역지 사람들은 아빠를 잃은 것처럼, 형님을 잃은 사람들처럼 망연자실했다. 집안의 가장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

▲ 항암치료 중 세상을 떠난 안승렬 선교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병원과 사역지를 오가며 자신의 건강보다 아마존 원주민들과 사역, 아이티 난민들에 대한 생각과 걱정 뿐이었다.

미망인 유리에 선교사가 주는 감동

안승렬 선교사의 장례식에서는 평생의 동역자였던 아내 마가렛 유리에선교사가 그가 즐겨 불렀던 찬송가를 기타반주하며 부르며 안선교사와의 추억을 이야기하여 참석자들의 가슴을 감동으로 적셨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마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선교동역자로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순종하고자 하는 사역자의 다짐이었다. 유리에 선교사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의연히 딛고 일어섰다. 어쩌면 그 슬픔에 머물러 있을 만큼 사역지의 현실이 녹녹치 않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리에는 무엇보다 안선교사가 남기고 간 사역을 계승하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소명에 대한 순종’이라 여긴다.

“그가 마지막 중환자실의 집중치료실에 있을 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저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신학교는?’ 했어요. 그에게는 마지막까지 그의 꿈, 그의 사명, 그의 사역에 대한 염려로 가득했답니다.”라며 남편과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서운할 수도 있는 대목인데도 유리에는 조금도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천상 선교사다. 남편을 떠나보낸 상황에서 유리에 선교사는 소명자의 자세를 바로하고 일어섰다.

“저는 그의 사역지에서 계속 일할 것입니다. 전보다 더 잘해보려 노력할 것입니다. 남편이 하던 것처럼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감당하겠어요.”

유리에는 음악가이자 치과의사이다. 열네 살 소녀 때 선교사가 되기로 다짐하고 줄곧 그 길로 달려왔다. 선교를 위해 음악을 공부했고 선교를 위해 치과의사가 되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오직 선교만을 위해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남편을 만나게 됐고, 그 길에서 늘 행복해 했다.남편을 먼저 보낸 유리에의 고백은 담담하고 또 하나님 중심이다. “모든 것이 마치 퍼즐 게임의 작은 조각들처럼 산재해 있답니다. 그러나 한 조각 한 조각씩 제자리를 찾아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지요. 하나님의 섭리 안에도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간다면 틀림없이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것입니다. 브라질 정부나 종교단체나 여러 NGO들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매일의 삶 순간에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마치 작은 개미와 같은 무명의 자원 봉사자들입니다. 조그만 잎사귀지만 꾸준하게 나르는 개미와 같이 일하는 그들이 사람들을 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리에는 하루 속히 원주민들이 스스로 사역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부족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교재를 번역해내는 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훈련하는 일을 매우 중요한 사역으로 꼽고 있다. 유리에는 특히 언어능력이 뛰어나 5개 국어에 능통하다.  두 아들은 이미 국립학교의 대학생이 되었고, 입양한 두 딸은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이들도 엄마의 동역자가 되어 아빠의 유지를 이어갈 것이다. 유쾌한 비전 메이커였던 아빠 안승렬은 사역중독자였지만, 가족에게도 또한 유쾌하고 비전메이커로 모두를 ‘행복한 가족’으로 만들어 놓았다.

▲ 아마존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그의 곁에는 아내이자 동역자인 유리에 선교사가 항상 있었다. 다정했던 안승렬 선교사 부부의 모습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실을 수 있도록 도움주신 브라질 강성철 선교사님과 광주대성교회 민남기 목사님, 그리고 후원교회인 동광교회와 여러 정보제공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박에스더 기자 hipark@iwithjes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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