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 씨 다섯 남매는 유난히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아마도 이북에서 월남한 부모님이 이 땅에 마음을 두지 못해서였을까. 캐나다, 호주, 한때는 더 넓게 흩어져 살다보니 다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에는 엄마를 모시고 사는 오빠의 아들 결혼으로 오남매가 모두 모였다. 마치 먼 곳에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온 듯 아흔의 엄마 앞에 차례로 선물이 열리며 두 주간의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7년 전 부모님의 결혼 60주년 때나, 4년 전 아버지 장례에 모였을 때와 같이 바로 옛 가족 모습으로 돌아가 살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결혼식 행사는 바로 지나가고 엄마 앞에서의 대가족 생활이 열렸다. 토스트와 우유, 과일이 큰 식탁에 놓이며 커피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앉는다. 한 명씩 돌아가며 하는 식사기도 시간, 지난 세월 각자의 삶이 녹아 매일 눈물을 짜내고야 만다.
‘일일 관광’이나 ‘쇼핑’, ‘엄마 말동무’하는 팀으로 나눠 한낮의 일정이 짜이면, 따로 또 함께 시간을 보낸다. 저녁엔 손님들과 함께하거나 옛날 모습으로 놀이판이 벌어진다. 이때는 주로 윷놀이를 했는데 규칙을 바꿔, 거꾸로 가는 말판을 쓰기도 하고 못 잡는 윷, 윷이름 바꾸기로 일부러 헷갈리게 하며 낄낄거린다.
식사내기, 간식내기를 걸고 남녀 편을 갈라 열을 내면 엄마는 4, 50년 전 동대문 마당 넓은 집에서 떠들며 살던 때 같다며 만족해하셨다.

점점 사라지는 가족의 시간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이어지는 공동 활동이 열흘이상 지속되니 좀 빠져 쉴 만도 한데 누구 하나 그러지 않는다. “얘, 둘째 어디 갔니?” “막내가 안 보이네.” 수시로 출석 체크하는 엄마 때문인지…. 생각해 보니 어느 가족 수련회도 이렇게 온종일 열흘 이상 할 수 없겠다 싶었다.
이즈음 신혼여행서 조카가 돌아왔다. ‘그렇지, 우린 이 얘 결혼식 때문에 왔지.’ 교포 2세 신랑, 신부의 어설픈 한국식 인사에 모두 한 마디씩…. 식구 많은 집은 말도 많다. 두 주간의 가족 수련회를 마치며 형제들은 다음 결혼식에는 오기 힘들 거라고 모두 말했다. 그것도 이듬해라니….
그런데 다시 그날이 다가왔고 이번에도 한 집에 한 명씩 오라는 부탁이다. 아흔이 넘은 엄마, 그 엄마를 30년 가까이 모신 큰 오빠, 장남은 형제들에게 다른 걸 바라지 않는다. 단지 이런 기회가 있을 때 함께 있자는 것.
그래서 경숙 씨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좀 더 능동적으로 가족 수련회에 참여해야지. 살면서 잘못했던 얘기도 나누고 큰 오빠, 큰 올케 언니한테 고맙다는 맘도 잘 전해야지.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유머한마디

초랗게 예쁜 잔디

▲ 여행을 다녀온 딸에게 엄마가 물었다.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어?”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동네에 사는 딸이 촉촉한 지역을 다녀와서 ‘초랗게 예쁜 잔디’라고 문자를 보내 왔다. 엄마는 잘못 쓴 맞춤법을 가르쳐 주려 전화를 하며 “파랗다고?” 하고 물었다.
“아니, 파란색이 아니고 초록색~ 초랗다고.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처럼 초랗다고.” (딸애는 어려서부터 외국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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