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중한 물건 ②

오래 전 오빠의 책상 서랍에서 고장난 만년필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근 10년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구점에서 구입한 것일 테니 특별히 좋거나 비싼 만년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딘지 세련되지 못한 플라스틱 박스에 들어있었던 그 만년필은 아버지가 오빠에게 대학입학선물로 준 것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입학선물

오빠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대학생에게 어울리는 무언가를 선물로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뭔가 특별하고 대학생활과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만년필, 만년필이 좋겠다, 생각해 내고 아버지는 기뻤을까.
대학 입학 선물로 만년필을 주던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나갔다는 걸 알아채기에, 아버지는 대학 입학이라든가 축하 선물 같은 단어와 너무 멀리 떨어진 삶을 사셨다. 그러니 만년필은 이런 고민들 끝에 아버지가 선택한 최선의 선물이었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만년필을 살 수 있는지 모르니 동네 문구점에 들어가 만년필이 있느냐고,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선물로 주려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 말을 전하는 아버지의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가 나는 보인다. 몽블랑이니 워터맨이니 하는 브랜드 만년필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가격이었겠지만 어찌됐건 그 만년필은 동네 문구점에서만은 가장 비싼 것이었을 테다.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포장된 만년필을 들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버지가 꿈 꾼 오빠의 미래는 그 만년필을 재킷 주머니에 꽂아두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며 가끔 만년필을 뽑아 메모를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삶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알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자식 놈의 미래만은 한없이 고생스러웠던 당신의 지난날과는 다르리라 믿었을 것이다. 몸이 아니라 머리로, 건물 밖이 아니라 안에서 일하며 조금 덜 고생스러운 삶을 살기를.
그러니까 그 만년필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아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였고, 당신이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가는 아들에게 주는 무기였다.

기대와 함께 사라진 만년필

하지만 그 만년필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고장 나 버렸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만년필은 생각보다 다루기 까다로운 필기구다. 때가 되면 잉크를 갈아주고 세척도 해야 하는 만년필의 불편함은 만년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는 미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갓 스무 살이 된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가 그 불편함을 미덕이라고 여겼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악필이라 글씨 쓰는 것을 싫어하고 필통 하나 없이 고등학교 3년을 보낸 오빠가 그 만년필로 제대로 된 글씨를 써보기나 했을까.
그 만년필이 내 눈에 들어 왔을 때 그 만년필은 컨버터에 잉크를 넣어두고 오래 사용하지 않아 피드가 막힌 상태였다. 만년필 속의 잉크통이라고 할 수 있는 컨버터는 사라지고 없었고, 플라스틱으로 된 몸통에는 금이 가 있었다. 오빠는 군대에 가고 없을 때였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오래된 만년필’이니, ‘고장난 만년필’ 같은 단어들을 검색해 그 만년필을 고쳐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만년필은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만년필용 잉크가 아닌 제도용 잉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도 문구점 주인도, 만년필에는 만년필용 잉크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듯 했다. 모두에게 처음인 만년필이었다. 오빠는 일단 선물이니 써보다가 어쩐지 필기감도 별로고, 사실 딱히 사용할 만 한 데도 없어 그 만년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잉크가 막혀 나오지 않는 걸 보고 에라 모르겠다며 서랍 깊숙이 넣어두지 않았을까.
나는 여전히 고장 나 있는 만년필을 다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그 만년필은 사라졌다. 그 사이 오빠는 군대에서 돌아온 뒤 복학을 포기했고, 책상 앞에서 일하지 않는 삶을 택했다. 아버지가 만년필을 사면서 꿈꿨을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태양 아래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고장난 만년필은 없다

대신 또 다른 만년필의 주인이 된 것은 바로 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집안 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진 탓에 가족에게 선물을 바라거나 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된 뒤에도 타자에 익숙해진 터라 한 자루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만년필을 살 여유는 없었다. 그런 내 삶 속에 다시 만년필의 존재가 들어온 것은 2년 전 생일 때다. 내게 평생 생일 선물을 준 적 없던 오빠가 결혼 후 마음의 변화가 생겼는지 선물로 뭘 사줄지를 물었고, 나는 만년필이라 답했다. 왜인지 문득 그 고장난 만년필이 생각났고, 생각이 나자 만년필이 갖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오빠에게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고 튼튼한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 받았다. 원래 손글씨를 좋아하는 편이라 만년필에는 쉽게 익숙해졌다. 만년필은 결국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도구다.
손끝으로 두드릴 때와는 다르게 만년필로 써 나갈 때는 글을 몸으로 밀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글자가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그 문장들이 모여 글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손으로 써나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을 위해 매일 글을 썼지만 정확히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던 시절, 나는 그 만년필로 글을 쓰고 좋아하는 문장들을 베껴 적으며 이유 없는 불안을 견뎠다. 손으로 무언가 쓰고 있을 때면 가끔 10년 전 그 고장난 만년필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 시절을 지나며 나는 그 만년필을 처음 발견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과는 다른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의 내가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 느끼듯이, 손으로 움직이고 몸으로 밀고나가는 삶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당신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렇다면 이미 오빠는 충분히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며, 펜 하나를 유일한 무기로 살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세상이 보기에 어떠하든, 우리 가족 중 누구의 삶도 고장 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 고장 나지 않을 이 튼튼한 만년필로 세상을 밀고 나가며 계속 글을 써 보겠다고.

윤이나
TV평론가. 문화매거진 ‘10asia’, ‘KTX매거진’, ‘한겨레21’ 등 다양한 매체에 대중문화에 관련된 글을 쓴다. 그녀가 쓰는 다양한 글처럼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지만 정작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글쓰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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