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르는 노래가 마지막 노래인 것처럼. 오늘 만나는 이가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입가에 흐르는 이 노래는 마음을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말기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한 어머니를 위한 콘서트. 그 어머니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유난히 아름다운 노을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노을이 저리 고운 것은 분명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어떤 노래로 문을 열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언제나처럼 콘티를 짜 놓고도 안심은 멀기만 합니다.
“위잉~.” 전화기의 진동이 울립니다.
“여보세요?”
“저희 어머니께서 그만….”

스데반을 닮은 어머니의 미소

너무도 짧은 한 마디. 한숨조차 나오질 않는 먹먹함…. 잠시 제 영혼은 길을 잃습니다.
‘목숨이 사라진 이에게 더 이상 나의 노래는… 무슨 소용이 있나….’ 죽은 노래나 다름없는….
허무의 긴 그림자가 제 발 밑으로 스며들었고 그저 노을만 멍하니 쳐다 볼 뿐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영혼에게 산 자가 해 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구나…. 살아있음만이 아름다움이고, 살아있음만이 행복이고, 살아있음만이 의미이구나. 오로지 살아있음만이 유일한 기회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게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통감하는 순간, 저는 목적을 잃은 길 위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까지도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 여유는 어디에서 왔을까….’ 제 귀에 솔깃한 것은 어머니가 성경책을 늘 끼고 사셨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머니의 인생 스토리는 기구함이 절절했습니다. 시집을 가고 얼마 후,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고 시댁의 눈길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잘 못 들어온 탓에 집안에 우환이 찼다는 것이지요.
남편 병수발에, 경제적 형편은 말할 것도 없이 힘겨운데 시어머니의 핍박은 날로 더해가고…. 시댁 가족까지도 어머니를 무시하고 외면했다고 합니다. 그러기를 15년, 기나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어머니는 결국 암이라는 넘을 수 없는 큰 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암이라는 사실도 알리지 않고 지내셨지만 결국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지요.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찾아간 장례식장에서조차 어머니는 문전박대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도 부정을 탄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서이지요. 어머니는 묵묵히 당하기만 하실 뿐 끊임없이 따뜻한 팔을 내미셨다고 합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 아린 얘기였습니다. 어머니는 설움과 한탄으로 어두컴컴한데서 홀로, 얼마나 숨죽여 우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끊임없이 사랑에 도전하셨던 것이겠지요. “저 분은 죽지 않을 것 같애. 곧 퇴원할 것 같애”라는 말이 병원에서 돌고 돌만큼 어머니의 얼굴은 미소로 환했다고 합니다.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데반입니다. 순교의 자리에서 보여준 그의 미소. 보좌에 일어서신 예수님을 보았다던 그 스데반의 얼굴과 어머니의 미소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렇게 어머니는 밝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죽음의 감정보다 강한 사랑의 감정으로 어머니는 사셨던 것 같습니다. 어둠이 빛을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가 붙든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이기고도 남는 넉넉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푸른 가지를 품고 있으면 지저귀는 새가 날아와 그 곳에 앉는다는 중국 속담이 있지요.
어머니의 마음속엔 그런 노래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향해 가던 저의 노래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름답게 물든 노을을 등지고 다시 달려야했습니다. 슬픔의 밭이 되어버린 제 마음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 떠오르는 한 편의 시가 있었습니다. 한희철 목사님의 “후회”라는 시입니다.

큰 집이 아닐 거야
좋은 차도 아닐 거고
많은 돈이나 빛나는 훈장도 아니겠지
직함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세상 떠날 때

지난 시간 눈물로 뉘우칠 건
더 많이 갖지 못한 것
더 높이 오르지 못한 것
그런 것 아닐 거야

그 때는 몰랐던 평범한 순간들
쉽게 외면했던 사람들
지키지 못한 약속들
생선 가시 목에 걸리듯
엉뚱한 것들 마음에 걸리지 않을까

왜 사랑하지 못했을까
왜 용서하지 못했을까
왜 고이 품지 못했을까
빈 몸뚱이 하나 내려놓고
이 세상 떠날 때
빈손으로
아주 떠날 때는 말야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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