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대 서울에서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등화관제 훈련을 할 때다.
등화관제(燈火管制)는 일종의 민방위 훈련으로 한밤중 적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말 그대로 불을 다 끄는 훈련이었다. 혹시라도 불을 켜야 한다면 창문을 두꺼운 이불로 꼭꼭 막아야 했다. 완벽한 어둠 가운데서는 작은 담뱃불씨도 공중에선 잘 보이기 때문에 폭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차 대전 때 담뱃불씨 하나 때문에 마을 전체가 폭격을 맞았다는 거야.”
언니의 진지한 말에 오금이 저리기도 했다.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전쟁에 대한 공포심과 우리나라가 휴전국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훈련은 실제인 것처럼 받아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 덕에 우리 네 남매는 정말 진지하게 등화관제에 임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론 스릴 넘치고 흥미롭다는 생각 역시 감출 수 없었다.
방마다 전등은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끄고 연례행사라도 치르는 듯 우리들은 옥상으로 나섰다. 낮에 미리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할머니가 삶아주신 옥수수를 먹으며 서울의 낯선 어둠을 즐겼다. 평소엔 절대 보이지 않던 무수한 별들이 하늘 가득 박혀 있었다. 밖에선 동네 아이들이 어두운 골목길을 우우 몰려다녔다.
“불 꺼요! 000호 불 끄세요. 창문으로 다 새어나와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불 끄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선 아이들도 ‘불꺼요’를 따라하며 까르르 웃었다. 서울은 낯선 암흑이었다.

암흑속에서 발견한 것들

가끔 정전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집안은 어둠과 침묵에 휩싸인다. 그제야 전기 기기가 작동될 때 웅웅 거리던 소리가 참으로 컸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찾아서 켜는 초의 불빛은 참으로 달콤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식사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던 이웃집과도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쪽도 정전이에요?”
“네, 다 정전인가 봐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둠 속에서 어떤 끈끈한 동지애도 느껴진다. 매정하고 별난 이웃이 아니란 생각, 그동안 왜 터무니없이 오해를 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어둠 가운데 있으면, 담장 밖의 소리가 얼마나 잘 들리는 지도 알게 된다. 텔레비전 소리가, 냉장고와 형광등이 내는 소음이 얼마나 분주했던가도 알게 된다. 촛불 아래 얼굴을 맞댄 가족의 얼굴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새삼 콧등 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땅 밑의 불빛에 휩싸여 올려다보지 않았던 하늘도 그제야 보게 된다.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가, 그런데 이 장엄한 하늘 아래 오롯이 서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가끔 여름 한밤중의 등화관제가 있던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담장 너머의 소리가 들리는 시간, 밤하늘의 장엄한 은하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내 삶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는 등화관제도 필요할 것 같다. 나를 혹은 내가 안팎으로 비추던 불빛도 잠시 끄고, 텔레비전도 전등도 휴대폰도 끈 채 나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때 보게 되는 나와 가족, 내 이웃과 친구들은 조금 더 따뜻하고 정겹고 그리고 기적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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