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특집 2 | 선교사가 보내온 감사의 현장

아프가니스탄의 중부 내륙 지방에 탈레반 정권을 피해 이웃나라로 피난 갔던 주민들이 돌아와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옛날 살던 집은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에 산중턱에 듬성듬성 나 있는 동굴 안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목회자들과 한국의 젊은이들을 인도해 이 동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동굴 집들은 포대 하나를 찢어 걸어놓은 것이 대문 역할을 합니다. 그것을 젖히고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두세 명이 겨우 누울 만한 작은 공간에서 보통 5명 이상이 생활을 합니다. 이불도 없고 침대도 없습니다. 맨바닥에 옷가지들을 깔고 자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느 집을 들어가도 식사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싸한 마음을 안고 돌아 나오는데 함께 올라갔던 대원 하나가 울면서 달려 왔습니다. 여자들은 집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자대원들에게 가정을 방문해 보라고 부탁했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저 중간에 있는 동굴집으로 들어갔더니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었어요. 뭔가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아이는 이방인이 들어오니까 놀랐나 봐요. 막 울기 시작했고 아무리 젖을 빨려 봐도 그치지를 않는 거예요. 젖도 안 나왔나 봐요. 그래서 제 가방 속에 뭐 먹을 거라도 있나 뒤졌더니 사탕이 하나 있었어요. 그걸 아이에게 쥐어 줬어요. 그런데 그 어린 엄마는 사탕을 아이에게서 빼앗아 자기가 먹는 거예요. 엄마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는데 얼마나 굶었으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진영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믿을 수가…”
그런 상황이 어디 그 집 하나 뿐이겠습니까.
마을을 걸어 나오는데 아이들이 새카맣게 몰려 나왔습니다. 발을 보니 하나같이 맨발이었습니다. 날카로운 돌이 깔려 있는 산자락에서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를 번쩍 안아 발바닥을 살펴보았습니다. 코끼리 등 같았습니다. 발만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은 씻지도 못해 갈라지고 찢어져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코 묻은 아이들의 헌금

한 달 후에 미국서 신학생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화를 들면서 내가 만난 동굴 마을의 어린이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인교회 어린이 담당 전도사로 섬기는 분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그 전도사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들을 자기 교회 어린이들이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전도사는 부활절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광고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신발도 없이 사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진도 보여 주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큰 선물인 구원을 주시기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이니까 올해에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전도사의 말에 아이들도 동의했습니다.
매년 계란을 삶아 색칠을 하고 나누어주는 것이 부활절 전통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활절 예배 때는 아이들이 특별 헌금도 했습니다. 코 묻은 돈으로 한 헌금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헌금을 가져왔습니다. 액수는 적었습니다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마음은 이 세상을 다 사고도 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봉투를 받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전도사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좋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절에 어쩌면 부모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을 지도 모르지요.
나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면서 그 헌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상점이라고 해야 불과 20여개. 신발을 파는 가게도 두세 개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어린이 신발은 몇 개나 됩니까?”
“왜 다 사시려고? 창고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스무 켤레는 될 겁니다.” 신발가게 아저씨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대답했습니다.
“아저씨, 어린이 신발은 다 주시구요, 사이즈가 작은 신발들도 골라 주세요.”

빨간색 운동화의 꼬마

세 곳의 가게를 모두 털다시피하여 140켤레 정도의 신발을 사서 동굴마을로 갔습니다. 동네의 어른들을 찾아가 가져온 신발을 모두 맡겼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아이들부터 나누어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 신발은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보내준 것이라고 꼭 얘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신발 자루를 둘러메고 동굴 마을 한가운데로 갔습니다.
나는 동구 밖 멀찍이 서서 아이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드는 광경을 바라봤습니다. 서로 앞줄에 서려고 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어떤 아이는 신발을 받자마자 집으로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한 어른이 신발을 신고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막무가내로 신발을 들고 뛰었습니다.
나는 동네 사람들이 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 들어갈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동굴 마을은 다시 일상의 상태로 돌아갔고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꼬마 하나가 아장아장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발에는 금방 받은 것 같은 빨간색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습니다. 뒤뚱뒤뚱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인데 나를 어떻게 발견하고 온 것인지…. 아마도 어느 부모가 그렇게 시킨 것 같았습니다.
“안녕?”
나는 인사를 하며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뭐 줄 것이 없나? 캔디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이는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머뭇머뭇하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슈크란(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던 내 손은 멈칫했습니다. 그리고 멍하게 아장 아장 걸어가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 책임자이다. 죽음을 무릎쓰고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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