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빠한테 매를 맞았던 기억이 딱 한번 있다. 성냥에 불을 붙였다가 꺼뜨린 것을 벗겨놓은 귤껍질 위에 올려놨다. 그것을 그대로 두고 내 방에서 잠이 들었다. 왜 불장난을 했냐며 무척 혼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엄마와 할머니한테 매를 맞아도 더 맞았다고 하는데 (언니들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거의 기억나지 않고 일생 딱 한번 맞은 아빠의 매는 또렷하게 기억난다는 것이다.
그건 억울해서도 아니고 아파서도 아니다. 아마도, ‘처음’ 맞은 매였기 때문일 것이다.

‘첫’친구, 기영이

‘처음’이란 것은 선명한 기억의 흔적을 만든다. 나의 ‘첫’우정은 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던 집 딸인 ‘기영’이란 이름의 친구다. 예닐곱에 시작된 나의 첫 친구였다. 그리하여 이름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기. 영.
기영이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2학년 초에 엄마와 함께 잠깐 동네에 들렀다고 했다. 난 기뻤다. 기영이는 조금 달라보였다. 옷가게를 했을 때보다 훨씬 더 옷도 잘 입고 있었다. 머리도 많이 길러서 허리께까지 치렁치렁했다.
“기영아~!”
기쁜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당연했다. 나의 ‘첫 친구’였고 ‘첫 우정’이었으니까. 기영이는 만면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안녕, 반갑다. 아, 그런데 이름이… 뭐더라?”
안타깝게도 나의 첫 친구이자 나의 첫 우정이라 여겼던 기영이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았다. 서로를 못 본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건만 내 이름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모습을 보니 기운이 쫙 빠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름을 잊을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기영이가 이사 가고 난 뒤 난 자주 그녀를 그리워했다. 기영이네 가게를 지나갈 때면 나 혼자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친구를 그리워했던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너무 기억을 잘 했던 내 탓이라 해야 할지, 어쨌든 당시 기영이의 태도는 내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상대도 똑같이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첫 순간이기도 했다.

무뎌지는 ‘처음’의 순간들

우리는 무수한 '처음'을 만난다. 그리고 그 처음이 두 번째가 되고 세 번째가 되면서, 처음의 생생함은 잊혀지고 사소해지고 가벼워지고 만다.
문제는 이미 지나간 ‘처음’의 경험은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갔던 ‘첫 순간’은 그리하여 대개 난처하거나 허무하거나 황당하거나 감당하기 힘들었던 경우가 많다. 그도 저도 아니면 얼굴이 붉혀질 정도로 어설프다는 것이다. 물론 감격을 만들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참으로 많은 ‘첫 순간’들을 경험했다. 첫 걸음마, 첫 이유식, 첫 등교, 첫 사랑, 첫 휴대폰, 첫 직장, 첫 여행 등의 첫 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지나면, ‘처음’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고 밋밋해 지기도 한다.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처음’이 감당해야 하는 어설픔이나 긴장감을 더 이상 겪으려 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감격과 추억의 성장도 멈췄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 느슨해졌던 감정을 팽팽하게 당겨줄 미지의 것들을 한 번 적어보자. 다소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고 긴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 경험을 겪어보는 일에 인색해선 안 될 것 같다. 그러한 것이 지금의 나를 보다 더 겸손하게 만들고, 그래서 더 자라게 하고, 그것으로 미래의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 테니 말이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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