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노동의 공간, 예수원을 가다

침묵과 고요, 나의‘진정한 쉼’아름다운동행은 이번 ‘쉼’ 특집호를 기획하면서 본지 기자가 직접 ‘쉼’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체험적으로 다가오는 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박정은 기자가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에 들어가 예수원이란 독특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침묵과 노동 속에서 쉼의 진정한 의미, 곧 그분 안에서의 쉼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다음은 박 기자가 2박 3일의 일정으로 정리한 예수원의 일상과 그 속에서 경험한 ‘쉼’의 의미들이다.

 

▲ 태백역에서 버스를 타고, 또 다시 산을 올라 도착한 예수원 입구.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태백의 고원, 그 서늘하고 청량한 바람 속에 예수원은 웅크리듯 자리하고 있었다. 첩첩산중, 그 깊고 깊은 침묵의 공간 속에는 예수원의 모토처럼 오로지 기도와 노동으로 이루어진 삶, 아니 기도가 노동이 되고 노동이 다시 침묵으로 이어지는 삶을 자신의 온 몸으로 체득해내기 위해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둑어둑 길게 늘어지는 산 그림자 사이로 예수원의 종소리가 내려앉고 있었다. 삼종 소리…. 삼종은 하루 세 번 예수원에서 울리는 종소리다. 이 종소리가 울릴 때 공동체 사람들은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의 만남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밀레의 ‘만종’을 떠올렸다. 황혼녘, 밀밭에서 추수하는 한 남자와 여자가 삼종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만종’…. 밀레는 자신의 작품 ‘만종’을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 종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고 회고했다.

침묵이 낯선 이방인

뎅…뎅…뎅…. 예수원에 있다 보면 이 종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예수원에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삼종 외에도 소침묵, 대침묵, 예배시간, 식사시간 등을 종소리로 알려준다. 지금 울리는 종은 ‘소침묵’을 알리는 종이다. 약 2분 남짓 되는 시간…. 이 시간만큼은 일상의 모든 분주함이 종소리를 따라 가라앉는다. 마구 휘저은 물속의 흙먼지가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
‘소침묵’(小沈默) 시간인 밤 9시부터 10시까지는 작은 목소리로 필요한 말만 할 수 있고, ‘대침묵’(大沈默) 시간인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예배 전까지는 온전한 침묵 가운데 안식하거나 하나님과만 대화하는 시간이다.
온 세상이 종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핸드폰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이 단절된 곳. 그러나 도시의 혼잡과 소음을 등에 잔뜩 지고 온 나로서는 여전히 이 ‘침묵’이 낯설기만 하다. 침묵시간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같은 숙소를 쓰는 자매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께 집중하고자 왔건만, 종소리에 겨우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가룟 유다에게 팔려가시기 전, 졸음을 참지 못해 꾸벅 꾸벅 졸던 제자들에게 “한 시도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며 탄식하던 예수님의 말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곳에서조차 그분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과 침묵 속에서 온전하게 평안할 수 없는 일상의 관성에 쉬이 기도를 시작할 수 없었다.
‘주님….’
나는 이런 침묵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침묵이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이야기한다. 나의 욕망을 위해서, 나의 욕구를 위해서…, 과연 그 일상의 순간에 그분과의 만남은 몇 번이나 됐을까….

▲ 지난 봄, 소천한 현재인 사모가 가꾸던 '할머니 꽃밭'. 그녀는 지금 없지만, 꽃밭의 꽃들은 그 생명의 기운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 안에 누리는 ‘쉼’

예수원의 기본 일과는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는 성(聖) 베네딕 수사장의 가르침에 근거해, 하루 세 번 예배와 노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배는 예수원을 방문한 손님들에게도 의무사항으로 주어지지만, 노동은 개인의사에 따라 자율적이다. 예수원의 하루 일과에 동참하고 싶어 나도 노동에 참여했다.
오늘 할 노동은 ‘할머니 꽃밭’ 김매기이다. ‘할머니 꽃밭’은 현재인 사모가 생전에 가꾸시던 꽃밭이다. 예수원에서는 그녀를 ‘할머니’라 불렀다. 지금 이곳에 그녀는 없지만, 그녀가 가꾸던 꽃밭엔 ‘한련화’가 한가득 피어있었다. 삽을 들고 꽃 사이사이에 돋아난 잡초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흙냄새가 이리 좋다니….’ 한 번도 강렬한 흙냄새를 경험하지 못한 도시인이었던 나는 태백의 기름진 흙냄새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흙내음이 상쾌하다는 생각을 이곳 예수원에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가끔 나오는 지렁이도 땅을 건강하게 해주는 고마운 생명이란 생각에 길가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를 다시 밭으로 이전(?)시켜 주기도 했다. 서울에서 봤다면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였을 텐데….
그렇게 한 30분 쯤 지났을까. 이마와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맑은 햇살과 산들바람으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흙을 만지며 함께 호흡할 때 마음 한켠에 퍼지는 이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흙 한줌과, 온 땅을 덮은 초록과, 눈부신 햇살 속에서 생명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도심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온기다.
두 시간여의 노동이 끝나고 새참시간. 대예배실에 모여서 찐계란과 커피를 나눴다. 우연히 한 자매와 대화를 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예수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던 그 자매는 이곳에서 영적인 쉼을 얻고 돌아가는 이도 많지만, 실망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그들이 실망한 이유는 이랬다. 주변에서 워낙 예수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하거니와, 대천덕 신부에 대한 책을 보고 이곳에 왔지만 정작 와보면 대단한 설교가 있는 것도,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랬다. 예수원에는 특별한 설교나 프로그램 같은 것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이런 산골보다 대도시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자매는 이곳은 그러한 것들을 몸소 살아보는 곳이라고 말을 이었다. 오히려 그런 프로그램이나 강의는 서울에 더 많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늘 좋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다니지만, 정작 삶으로 그것을 살아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듣고, 보아도 그것들이 내 일상 속으로 녹아내려 체화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일상의 한계를 느낄 때 무언가를 얻으러 이곳에 온다. 하지만, 이곳이 일상인 이들에겐 이곳이 바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렇다. 진정한 ‘쉼’이란 지금 있는 곳을 떠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유흥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일상에서 그분과 만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도가 쉼이요, 노동이 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원의 종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서울로 돌아온 내게는 예수원의 그 고요와 평화가 여전히 남아있다. 휴가를 내 먼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그 고요와 평화가 나의 진정한 휴가이다.

박정은 기자

 

▲ 예수원 전경.

예수원은…

성공회 소속 대천덕 신부와 그의 가족, 그리고 성미가엘신학원 학생들과 항동교회 신자들, 건축노동자로 함께 일했던 형제·자매들에 의해 1965년 설립된 수도생활 공동체다.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라는 모토 아래, 기도와 노동을 삶으로 실천하려 한 신앙 공동체로, 강원도 태백에 있다. 현재 약 40여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공동체 생활에 동참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신청 절차를 거쳐 2박 3일간 손님으로 머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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