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옆 작은 카페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문득, 얼마 전에 통화했던 어떤 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말기 암으로 00병원에서 투병 중이신데, 시간 되시면 어머니 위해 찬송을 불러 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 더 이상 병원에서 손 쓸 수 있는 게 없다고 곧 퇴원하라고 하시네요….”
파도 소리가 쌓일 때 마다, 그분의 목소리가 더욱 간절하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기약만 하고 사정상 찾아뵙지 못했었는데… 그 분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암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되어 이제는 손 쓸 방도가 없습니다. 오늘, 내일 하시는데 모르겠습니다…. 몸부림이 심하셔서 넓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잠시도 한자리에 누워계시지 못하시고 신음소리는 깊어만지고… 잠을 이루지 못해 너무 힘겨워하셔요. 지금 가족들이 어머니 옆에 둘러 앉아 예배하고 있어요. 제 아들도 서울에서 내려와 할머니 옆에 앉아 있어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시급을 다투는 촉박한 상황이었기에 그날 밤에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잠시 카페에서 누린 호사를 접고 곧장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보건소에 근무하시는 집사님과 제 노래에 코러스를 잘 넣어주시는 벗님이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박무가 하늘을 덮어 황혼을 볼 수 없는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렸습니다. 제 마음속에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분들께 도고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별이 뜨기 전 어둑한 시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찬송 소리가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아득히 먼 길에서 마중 나온 듯한 평온함이 우리의 발걸음을 위로하는 듯 했습니다.
여호와 이레일까요.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덜컹,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여위셨는지 살갗은 메말랐고, 뼈에 겨우 살만 붙어 있는 듯한 몸. 새 다리같이 가늘어 손만 대어도 바스라질 것 같은 팔과 다리. 그리고 양미간에 깊이 패인 주름만으로도 그간의 고통을 쉬이 짐작하고도 남을 만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어정쩡 인사도 건넬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침묵 기도를 하고 방바닥에 찬송가를 펼쳐 놓고 마음의 길을 따라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불렀을까요. 우리가 찬송의 발에 맞춰져 갈 때, 그렇게 아파하시던 어머니께서 스르르 잠드시더니 들숨에서 옅은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보건소 집사님은 손바닥으로 어머니의 온 몸을 정성으로 구석구석 쓸어내리시며 한 옥타브 낮춘 목소리에 불안정한 음정으로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그 모습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찬송이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을 부르는 순간, 깊이 주무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무슨 초인적인 힘을 내시며 벌떡 일어나 앉으시더니 마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신 것처럼 아픈 것을 까맣게 잊으시고는 허겁지겁 손님 환대하듯 빳빳이 몸을 세우시고 뭔가를 응시하셨습니다. 천사라도 보신걸까요.
주변을 두리번 하시더니 이내, 비 맞은 낙엽처럼 다시 쓰러져 자리에 찰싹 달라붙으시며 제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누우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더욱 찬송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 분이 주신 평안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찬송 소리가 온 방과 온 영혼을 가득 채울 때, 어머니는 미동도 없으셨고 호흡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듯해, 우리는 찬송하면서 혹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오묘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염려도 잠시,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깊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음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계속되는 찬송에 우리는 목적을 잃은 듯, 은혜 안을 헤메고 있었습니다.
보건소 집사님은 취한 듯이 규칙적으로 몸을 흔들며 끊임없이 어머니의 등을 쓸어 주셨고 가족 중 몇 분은 찬송의 가사를 눈물의 기도 속에 담고 있었고, 또 몇 분은 벽에다 몸을, 머리를 기댄 채 찬송을 불렀습니다.
기타를 잡은 제 손은 감각이 둔해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던 지체들이었지만 한 마음으로 찬송을 하는 그 시간은 지상이었으나 천상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발만 동동 거렸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평안으로 어머니를 안아주셨습니다. 덩달아 우리들까지…
찬송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뻣뻣이 굳어 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기어가듯 잠시 옆방으로 옮겨 몸을 누인 뒤에야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있는 제 모습이 스스로 얼마나 기특했는지 마음 저 밑에서부터 올라 오르는 뿌듯함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요…. 그 순간은 정말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 밤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부자였고 하나님의 평안으로 가득한 신부였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위한 찬송 부르기를 마친 뒤에야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깊은 밤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우리들만의 작은 콘서트를 열기에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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