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는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큰 사람으로 살기 시작한다.
세 살도 큰 애, 때에 따라선 '다 큰 애'라고 불린다. 부모의 첫 경험이라 관심과 기대 속에 살지만, 젊은 부모는 사랑으로 품어주기 보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 무게를 싣게 된다.

큰 애 구실을 해야지…

서영 씨는 어려서 동생을 업던 얘기를 곧 잘 한다. 엄마가 검정 띠개로 어깨, 허리를 칭칭 돌려 매주면 뒤뚱거리며 걷던 생각, 허리를 펴지도 앉지도 못하던 생각이 난다고 한다.
또, 살던 곳이 고지대라 수돗물이 안 나올 때면 초롱에 물을 받아 나르던 얘기도 한다. 길게 줄을 서서 덜 차게 물을 받지만, 지게에 매고 출렁거리며 집에 오면 옷, 신발이 다 젖고 물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는 것.
식구 많은 집의 큰 애로 살다 보니 서영 씨는 빨래도 많이 하며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엄마가 한 번 해보라 하기에 힘껏 빨았더니 "빨래 잘한다"고 하며 일이 계속 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길 서영 씨가 하면 어머니는 부인하신다.
“네가 빨래를 몇 번이나 했겠니. 그 때는 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바뀔 때 빈 날 몇 번 해봤겠지.”
“애를 업었다구? 글쎄 몇 살에 업을 수 있었겠나 꼽아 보자.”
6‧25전쟁 후 많은 가족 속에 경황없이 살아온 터라 서영 씨 어머니는 이런 소소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했다. 부모가 바라는 큰 애의 모습은 늘 더 잘해주길 바라는 것일까.
‘큰 애 구실을 해야지….’

긴 세월이 걸린 엄마와의 대화

서영 씨는 십대 후반이 되어서까지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는 동생 하나를 데리고 가야 했다고 한다. 어린 동생 하나라도 건사해야 들어와서 눈총을 덜 받으니까. 친구들과 빵집을 가든 영화를 보든 일일이 동생을 챙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외출하려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서영 씨는 친구들을 데려다가 집에서 노는 것도 좋아했는데 늘 엄마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식구가 많아 복잡한 집 큰 딸이 무얼 좀 도왔으면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달가울 일은 아니었겠지만 서영 씨의 욕구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서영 씨는 대중 속의 고독처럼 많은 식구 가운데 외로운 마음을 안고 살아왔으리라. 그래서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을 매우 따르는 '사람 의존형 성품'으로 살게 된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이렇게 살아온 서영 씨가 엄마와 마음 속 대화를 하는 데에는 긴 세월이 걸렸다. 시대 자체가 험란했음에도 자신이 철없게 살아온 면을 돌아보고, 많은 문제가 자기 탓만이 아닌 부분도 알게 되기까지, 신앙으로 자기 성찰로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한편 서영 씨의 어머니도 그 모두를 인정하며 한걸음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일 어머니가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큰 애의 말을 그때 그때 인정해 주었다면, 작은 천국은 좀 더 빨랐으리라 여겨진다.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 사람 의존형 성품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친밀해진 사람을 구속하는 경향이 있고 배타적인 친구유형을 맺으며 이들은 다른 사람이 늘 자신에 대해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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