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고 시원스런 인영 씨가 아프다고 한다. 늘 가족들의 대소사를 돌보는 건강 미인이 입원을 했다니 인영 씨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주변의 반응은 엄마, 아빠, 동생을 함께 걱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가정의 모든 병원에 관계된 일, 가사 돌보기, 아이들 일까지 모두를 척척해내는 인영 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딸로 40년을 살아왔다. 

모든 이에게 착한 사람, 인영 씨

‘늘 웃는 얼굴이다, 일 잘한다, 못하는 게 없다, 신앙 좋다, 멋있다….’
인영 씨는 정말 그랬다. 미술 감각도 뛰어나 차림새도 멋있고, 그녀가 만지는 것들은 종이나 꽃이나 망가진 물건이나 모두 새롭게 장식이 되었다. 성격도 따스해 어려운 일을 보면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교회경로학교를 도우며 기어이 노인복지 공부까지 한 것을 보면 그의 착한 에너지는 어디까지일지 궁금했다. 게다가 부모님이 일찍부터 이런저런 병을 앓아, 여러 병원을 모시고 다니는 일 모두가 이 착한 딸의 몫이었다. 식사 챙겨드리기는 물론 부모의 부모역할을 하며 살아온 것만도 10년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의 남편과 두 아이는 또 다른 좋은 남편, 알아서 잘 하는 아이들로 되어가는 듯 싶었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한 곳에 많이 기울이면 결국 남은 것만이 내 아이와 남편에게 주어지는 것을 인영 씨는 모르는 듯 했다. 인영 씨는 형제를 돌보는 일까지 감당했다. 부모님의 건강이 안좋다보니 동생들에 관한 일도 맏언니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만능인으로 살며 자신에게 붙은 별명대로 ‘착한아이’, ‘효녀’의 모습을 만들어간 인영 씨, 그 인영 씨가 힘이 빠졌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이 젓가락 사용을 못하는 것을 보며 놀란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쳐주지 않고 빨리 먹으라고 늘 포크를 주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평소 착한아이 딱지를 붙이고 커온 딸이 학교규칙을 어겨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부모 면담요청이 온 것이다. 그것도 연이어 몇 번씩이나….
뿐만 아니라 남편이 괜찮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데 인영 씨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인영 씨는 한동안의 가족구성원들 심적 변화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모두들 잘살기 위해 나는 수험생처럼 4시간 밖에 안자며 집안일, 바깥일을 돌보았는데….’
이렇게 놀람과 실망이 섞이는 순간, 인영 씨는 감기증세로 쓰러졌다. 
결과는 한동안의 휴식을 요하는 간염이었다. 병원에서도 마음을 쉬지 못하는 인영 씨에게 의사는 경고했다. “지금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큰 병이 옵니다. 잠도 7-8시간 자고 일을 줄이세요. 그리고 입원한 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웬만한 것은 놓으세요.”
그러던 중 인영 씨는 한 상담자를 만났다. 자신을 돌아보기로 시작해, 자신이 미술공부를 했음에도 자신만의 세계를 전혀 갖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긴 세월 정신없이 뛰어오며 자기를 잊고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에너지가 바닥이 난 것이다. 
‘그래 이젠 남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체력을 증강하자.’
엄마 앞에서 착한 아이로 살며 정신없이 일하던 사람에서 자기 마음과 몸을 살피며 남을 돕는 건강한 헬퍼로 살겠다고 마음을 추스린다.
여러 식구를 위해 적절히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할 것.
무엇보다 힘겨워하는 내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을 것.
그러기 위해 인영 씨는 식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다.


▲ 착한아이증후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려고 내면의 욕구를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착한 행동 뒤에 커다란 분노가 숨어 있을 수 있고, 자칫 내면의 억압이 극단적인 파괴적 행동으로 폭발할 수 있다.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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