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

‘가족’이란 의미는 각자에게 다를 테지만, 그 의미가 담고 있는 온도는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고, 뭉클한 건 비단 저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유독 가족행사가 많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에 이런 ‘날’들이 있는건, 아마도 가장 좋은 계절에 내 곁의 가장 소중한 이들을 맘껏 사랑하라고 주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요?
사랑과 감사, 그리고 말로 표현 못 할 그 뜨거운 무언가가 공존하는 가족. 그래서 이번 호에는 우리 주변의 ‘가족’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 이야기 하나 
“하늘서 아빠 지켜보렴,
사랑한다 정은아”

저는 마산에 살고 있는 정은이 아빠, 이상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스물 한 살에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힘든 일도 많고, 서툰 결혼생활이지만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물 두 살, 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얻었습니다.
정은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정은이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런 딸이었습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환하게 아빠를 맞이하는 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마를 해준다며 아빠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볼에 뽀뽀하며 잠드는 아이를 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99년 2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오후 3시쯤,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도로를 건너려는 강아지를 잡으려다가 그만 정은이가 차에 치였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누워 자는 듯 한 아이를 보자 전 아이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겨우 6년 살고 간 아이가 너무 가여웠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많은 것 해주지 못해서, 더 맛있는 거 못 먹여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진 않았는지, 무섭진 않았는지,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그렇게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내 아기 정은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정은아. 사랑하는 내 딸!  어젯밤 꿈에 네가 보였단다. 아빠가 다섯 살 너의 생일 때 선물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네가 가장 좋아한 옷이었는데….
늘 아빠 가슴속에 있던 네가 오늘은 너무나 사무치게 보고 싶어 아빠는 견딜 수가 없구나. 너를 잠시 다른 곳에 맡겨둔 거라고, 너를 잃은 게 아니라고 아빠 자신을 다스리며 참았던 고통이 오늘은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아빠나이 스물. 첫눈에 반한 너의 엄마와 결혼해서 처음 얻은 너였지. 너무나 조그맣고 부드러워 조금이라도 세게 안으면 터질 것 같아 아빠는 너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단다. 포대기에 싸여 조그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할 때엔 아빤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했단다.
더운 여름날이면, 행여나 나쁜 모기들이 너를 물까봐 엄마와 나는 부채를 들고 밤새 네 곁을 지키며 모기들을 쫓았지. 그러다 한두 군데 물린 자국이 있으면 아깝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어.
어린 나이에 너를 얻어 사람들은 네가 내 딸인 줄 몰랐지. 하지만 아빠는 어딜가든 너의 사진을 들고 다니며 자랑했고, 아빠 친구들은 모두 너를 매우 신기하게 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단다.
아빤 네가 있어 너무 행복했단다. 먹지 않아도 너만 보고 있으면 배가 불렀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을 몰랐지. 한동안 낮과 밤이 바뀌어 엄마를 힘들게 했을 때, 아빤 잠시 네게 짜증을 내기도 했어. 미안해, 아가야.
네가 처음 옹알이를 하며 아빠라고 불렀을 때,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갖다놓고 또 해보라고 아무리 애원을 하고 부탁을 해도 너는 엄마만 불러서 아빠를 애태웠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너를 보면서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단다. 늦잠 자는 아빠를 엄마대신 아침마다 깨워주며 아침인사 해주는 너만 있으면 만족했기에 엄마는 네 남동생을 바랐지만 아빤 네 동생은 바라지도 않았단다.
너의 사고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을 때, 아빤 네가 자는 줄만 알았단다. 이마에 약간의 상처만 있었지.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네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 이미 실신해서 누워있는 네 엄마와 주변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빠는 너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
자꾸만 식어가는 너를 안고 이렇게 너를 보낼 수 없다며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여전히 예쁘고 작은 너를 너무나 빨리 데려가는 하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단다. 금방이라도 두 눈을 살포시 뜨면서 “아빠!”하고 달려올 것 같은데 너는 아무리 불러도,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이 넓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많은데 그 중에 천 분의 아니 만 분의 일도 못해준 게 아빤 너무 너무 아쉽구나. 아프진 않았니? 고통 없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아기 많이 무섭진 않았니?
너를 친 그 아저씨는 아빠가 용서했어. 네 또래의 아들 사진이 그 차에 걸려있는 걸 봤단다.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이미 너는 없는데…. 아무 것도 소용없었단다.
정은아! 너를 지켜주지 못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우리아기…. 착한 아기…. 아가! 엄마 꿈에 한번 나와주렴. 엄마 힘내라고…. 아가, 엄마랑 아빠는 우리 정은이 잊지 않을 거야. 정은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걸 안 그 순간부터 아빠가 정은이 따라 갈 그날까지….
아빤 오늘까지만 슬퍼할게. 오늘까지만. 하늘에서 아빠 지켜봐. 아빠 잘 할게. 아빠 믿지?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한다. 정은아….”

 

 

 

■ 이야기 둘
 “전 형이 좋거든요” 

어느 날, RH-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급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피가 모자라 생명이 위독해지게 되었고, 여기 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찾지 못해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식구들 중에서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검사했는데, 다행히 아이의 동생이 같았습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한지라 어린애인 동생에게서 급한대로 혈액을 얻어야 했습니다.
“애야, 지금 형이 몹시 아프단다. 어쩌면 하늘나라로 갈지도 모른단다. 그러지 않으려면 네가 피를 좀 형에게 주어야겠다. 좀 아프지만 형이 다시 살 수 있단다. 어떻게 하겠니?”
아이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혈액을 뽑는 주사바늘을 꽂고 피가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를 쳐다보았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달랬고, 이윽고 주사바늘을 빼자 아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런데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눈을 감고 누워 있었습니다.
“얘야 다 끝났다. 근데 왜 눈을 감고 있니?”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그 아이는 헌혈을 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형에게 주고, 자기는 곧 죽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얘야 그럼 넌 네가 죽는 줄 알면서도 헌혈을 한다고 한거니?”
“전 형이 좋거든요.”

■ 이야기 셋
“미안해 사랑해”

한 노부부가 이혼을 했습니다. 성격차이로 이혼한 그 노부부는 이혼한 그 날, 이혼 처리를 부탁했던 변호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육십이 넘은 노부부가 주문한 음식은 통닭이었습니다.
주문한 통닭이 나오자 남편인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서 아내인 할머니에게 권했습니다. 그 모습이 워낙 보기가 좋아서 동석한 변호사는 어쩌면 이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가 기분이 아주 상한 표정으로 마구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지난 삼십 년간 당신은 늘 그랬어. 항상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더니 이혼하는 날까지도 그러다니…. 난 다리 부위를 좋아한단 말이야. 당신은 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당신은 늘 그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할머니의 반응에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날개 부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삼십년간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이혼하는 날까지….”
화가 난 노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이 자꾸 맘에 걸렸습니다.
“이제보니 나는 여태껏 같이 살면서 한번도 아내에게 무슨 부위를 먹고 싶은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하겠거니 생각했지.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주어도 늘 시큰둥한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내가 어리석었구나.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데…. 늦었지만 사과하고 아내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보고 할아버지가 건 전화임을 안 할머니는 아직 화가 덜 풀려 그 전화를 받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었으나 또 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이번에는 핸드폰 배터리를 빼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깬 할머니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삼십 년 동안 남편이 날개부위를 좋아하는 줄 몰랐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나에게 먼저 건넸는데, 그 마음도 모르고 나는 매번 뽀로통한 얼굴만 보여주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써주는 줄은 몰랐구나. 아직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헤어지긴 했지만 늦기 전에 사과라도 해서 섭섭했던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지만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화가 났나’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 남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간 할머니는 핸드폰을 꼭 잡고 죽어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 핸드폰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던 문자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미안해, 사랑해”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