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상을 결정짓는 시간도 나라마다 다른 모양이다. 미국인들은 15초, 일본인들은 6초가 걸리고 한국 사람들은 단 3초 만에 첫인상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어쨌든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억울할 정도로 짧다. 더구나 깊이 각인된 첫인상을 바꾸려면 무려 60번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좋은 첫인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진리인양 난무하다. 첫인상을 좋게 하는 방법을 담은 책은 매해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하고 좋은 인상을 만드는 성형수술 광고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첫인상의 헛점

과연 60번이나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얼마간의 만남 뒤엔 반드시 그 ‘첫인상’이 깨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첫인상은 무척 차가워 보였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고 보니 그렇게 따뜻하고 자상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첫인상은 순해 보였는데 몇 번 만나보니 실은 ‘한 성격’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말이다.
첫인상 그대로인 경우도 있다 하겠으나 과연 그럴까 싶다. 사람에겐 어차피 다채로운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스스로의 성격을 내가 알기에도 벅찬데 어떻게 상대방이 첫인상만으로 속속들이 알겠나 싶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조금 더 오랜 시간, 그리고 인내와 관심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평생에 걸쳐도 알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상대와 내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지,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여는지, 상대의 단점도 그의 성격으로 기꺼이 넘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 아닌가 싶다.
일명 ‘러브헌터’란 직업을 가진 남자가 ‘작업 기술’로 만나 결혼한 여자에게 결국 이혼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대개의 사기꾼들이 하나같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고서도 첫인상은 우리를 배반하기 마련이다.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

나의 친구들의 경우도 그렇다. 가령 내성적으로 보였던 K는 첫인상 그대로 내성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여전히 숫기 없고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러나 서너 사람 정도 모인 자리에선 그녀는 활발하고 외향적이다. 기실 그녀를 만나는 자리는 대개가 그러하니 더 이상 그녀를 ‘내성적’이란 단순한 표현으로 말할 순 없다.
잘 웃는 L은 첫인상 그대로 온순하다. 누군가의 무리한 부탁에도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그러나 그녀가 불의에 맞서 얼마나 용감하게 대처했는지 난 알고 있다. 단순히 ‘온순’하다는 말로 이제는 그녀를 표현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단 몇 마디의 말로 한 사람의 성격에 대해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인상에 대한 이러저러한 표현 자체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말이다. 그것은 또한 상대에 대처하는 나 자신도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어떠한 색깔로 변하는지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는 상대와의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 먼저 돌아봐야겠다. 나의 시선은 어땠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삐딱한 시선과 어긋난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거기엔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첫인상은 날카롭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지만 결국 인생에 있어선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첫인상을 만드는 짧디 짧은 몇 초간을 제외한 지난한 시간들이 비로소 참된 인상을 만들고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첫인상이 어떻게 배반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해 질 때 비로소 참된 관계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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