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짙은 보랏빛의 오르간이 있었다.
식구들은 그것을 풍금이라 하지 않고 오르간이라 했다. 보통 풍금보다 좀 더 크고 하얀 건반이 예쁜 우리 것은, 나중에 초등학교 교실에 있는 것과 비교해 보니 건반 크기도 피아노 사이즈만큼 컸고 옥타브도 많았다. 언니는 언제부터 레슨을 받았는지 두 손으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고 있었다. 특히 찬송가를 칠 때는 매우 웅장한 화음이 나왔다. 
나는 의자에 앉으면 페달에 다리가 닿지 않아, 서서 한발로 페달을 열심히 밟아야 했다.  어느 날 언니가 빨간색 바이엘 책을 펴고 기본이론을 가르쳐 주었다. 내 머릿속의 음악이 아닌 단순한 도레미파…. 나는 악보에 관심이 없어서 언니의 레슨을 받을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음악들은 바이엘의 뒷부분이었고 소나티네의 파트들이었다. 그것을 치기 위해 악보를 보기보다 귀에 익은 멜로디 화성을 건반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풍금 연습은 다리가 조금 길어지면서 페달을 열심히 밟아 소리를 이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리듬 합주 대회에 우리 반이 뽑혔는데 나는 집에 풍금이 있는 애라고 해서 피아노 반주자가 되었다.
산 산 산 산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들 들 들 들에는 곡식들이 자란다
오손도손 가지엔 과일들이 자란다
솔 솔 솔 비맞고 잘도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시시때때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우리나라가 자란다
피아노를 그때 처음 쳐보며, 부드럽게 눌러도 소리가 나는 풍금과 달리 손가락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반 아이들은 큰북, 작은 북,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탬버린, 실로폰을 치면서 노래를 열심히 연주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반주자라는 자리를 40대까지 이어갔으니 우리 집 풍금이 준 영향은 정말 컸다.
혜경 씨가 반주를 하게 된 얘기는 이렇게 덧붙여진다. “피아노를 배운 적 없어요. 그냥 혼자 쳤어요.”
피아노 반주자상을 몇 번이나 받은 혜경 씨의 이런 말은 늘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 말에 앞의 얘기를 더해보니 혜경 씨의 반주에는 언니의 간접적인 도움이 레슨 받은 만큼 컸던 것을 보게 된다. 집안에서 화음의 조화를 들으며 커왔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머리에, 가슴에 넣고 성장해 온 것…. 그것이야말로 연주를 잘 할 수 있는 감성과 음악성을 잘 배우게 된 바탕이 아니었을까.
더욱이 집에서 먼 교회에 출석하며 반주를 하던 언니를 칭찬하는 소리를 혜경 씨는 기억한다고 했다. ‘예배시간에 빠지거나 늦는 일이 없고, 4부(소프라노, 앨토, 테너, 베이스)를 놓치지 않고 잘친다’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혜경 씨는 반주를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겨, 후에 찬송가를 성실히 연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피아노를 아무한테도 배우지 않았다는 말은 직접 레슨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지만, 보랏빛 오르간을 일찍 집에 마련한 부모의 배려와 언니의 연주 연습이 혜경 씨에게 좋은 반주자가 되도록 영향을 준 것임에 틀림없다.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전영혜의 트위터 한마디
@gracejun1024 쉼터를 주는 아내들
일에 집중하며 서두르는 남편들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며 따스한 온기로 쉼터를 주는 아내들. 하나님은 대부분의 가정에 이런 조화를 허락하셨다.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 한국의 여인들이 바로 그러하다. 희생과 봉사없이는 가정이 잘 이뤄질 수 없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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