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너머로 벚나무가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 연분홍 꽃눈이 추억처럼 날리고 있었습니다. 베란다 문을 닫아도 창 너머로 그 나무가 보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늘 그 자리에서 연분홍 꽃을 피우고, 푸른 잎을 내고 까만 열매를 맺고, 울긋불긋한 잎을 떨구고…. 뿌리를 더 깊은 곳으로 내리는 겨울이 지나면 다시 새봄을 맞습니다.

희망이 고문이 될 때…

경남 밀양에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25년 전 끔찍한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창창한 미래와 행복한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게 된 것이지요. 목과 얼굴, 머리만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뿐,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야만 하는 절박한 신세입니다. 절망이, 희망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깨닫지 못할 때는 때로, 희망이 고문이 됩니다. 그에게 희망은 죽음보다 더한 고문이었겠지요.
어느 봄날, 그 분의 눈망울에 창 너머 어린 벚나무가 보였습니다. 그것도 달랑 한 그루.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 홀로 있는 한 남자의 마음에 그 벚나무는 희망나무처럼 보였던 걸까요. 벚나무도 한 자리에, 그 분도 한 자리에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 어린 벚나무는 마치 영혼의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졌을 겁니다. 벚나무는 그 분에게 자기의 삶을 보여주며 놀랍고도 아름다운 가능성이 있음을 침묵 가운데 가르쳐줬을 것입니다.
그 나무 너머에 아름다운 나라…. 그 아름다운 나라에 계시는 사랑…. 그 나무를 통해 사랑은 늘 그분을 보고 계실 겁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여행자
 
누워 계신 그 분을 처음 뵈었을 때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침상 공중으로 특이하게 설치되어 있는 노트북 컴퓨터입니다. 그 분의 코에는 센서가 밴드로 붙여져 있었습니다. 누워서 컴퓨터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누워서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십니다.
늘 바쁘다는 그 분께 뭐가 그리 바쁘시냐고 여쭈었더니 성경 말씀을 보느라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동행했던 J-커뮤니티의 강구영 벗님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누구보다도 더 자유롭게 여행하시는군요”라며 감탄했습니다. 그 분은 사랑을 아시는 듯 했습니다. 그 분의 미소는 이 세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표현은 제한하는 것이겠지요. 저와 강구영 벗님은 누워계신 그 분을 위해 작은 콘서트를 열고 나지막한 노래를 들려드렸습니다. 가장 낮은 곳, 가장 가난한 영혼에게 바치는 노래를….

몸은 세상에 묶여 있어도

놀라운 특권이지요. 얼마나 큰 영광인가요. 감사의 시작이 무(無)에서부터 임을 잘 아시는 그 분. 침묵 가운데 감사와 기쁨의 향기로 천국을 선포하시는 그 분. 노래 그 이상이신 그 분에게 제한된 노래를 부르는 어리석음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이미 어떠함에도 자유로울 줄 아시고 어떠함에도 아름다울 줄 아시는 그 분에게 부끄럽지만, 작은 것을 크게 여기는 그 분의 푸른 마음 때문에 모든 게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복인데 축복이 아니라고 여기는 게얼마나 많을까…? 축복이 아닌데 축복이라고 여기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깊은 착각 속에 행복한 나는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능할지….
비록 그 분의 몸은 이 세상에 묶여 있었지만 그 분의 영혼은 잠자리보다 더 가볍고, 별보다 더 빛났습니다. 꽃보다 더 향긋하고 바람보다 더 자유로웠습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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