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가장 멀리 느껴지는 문화공연은 단연 오페라가 아닐까. 영화, 뮤지컬 등 각종 공연은 여러 채널을 통해 소개되고, 어디서나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허나 오페라는 ‘티켓가격’이라는 거대장벽을 넘어도, 엄청난 규모의 무대장치와 화려한 의상에 무대 위는 ‘별세상’같고, 그들의 폭발적인 고음과 카리스마를 감상하노라면 어느새 그들과 나 사이 천 개의 유리벽이 세워진 느낌이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동양인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카네기홀 데뷔 콘서트에서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뉴욕 타임즈’지의 호평을 받은 김인혜 교수(서울대 음대) 인터뷰를 앞두고,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가 떠올랐다. 받은 달란트 양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달란트를 불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궁금하다. 노력 비법을 알면 ‘우리’와 오페라 여주인공 사이 유리벽이 거둬질 것 아닌가.

# 지옥훈련은 필수… 이어지는 훌륭한 무대
“어린나이 때부터 훈련에 전념했다”는 말처럼 경이로운 말도 없다. 그런데 이 말은 각 분야정상에 오른 이들이 한 결 같이 말하는 진짜 고백이다. 김 교수도 어린 시절부터 매일 반복되는 성악 연습과 음악적인 훈련을 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그 과정이 딱히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한번도 ‘무대에서 죽고 사는 성악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옥훈련’을 필수 과정이라 생각했다.
오페라 무대에 서기 위해선 성악 말고도 준비되어야 할 것이 많다. 자신감 표현도 이중 하나인데, 김 교수는 어린 시절 해낼 때까지 밀어 붙이는 추진력으로 ‘김인혜표 자신감’을 꾹꾹 충전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데뷔 콘서트 후 “해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김 교수는 다시 음악과 무대에 푹 빠져 지냈다. 국내 수많은 콘서트홀은 물론, 뉴욕 링컨센터, 카네기홀, 비엔나국립콘체르트하우스 등 최고의 홀에서 공연했으며, 일본, 홍콩, 북경, 모스크바 등 국내 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 국립오페라 <투란도트>, <오텔로>, <카르멘> 등 명품공연에서 열연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지난 6월 비엔나 ‘무직퍼라인’에서 가진 오페라 갈라 콘서트.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오스트리아와 보스니아(구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김 교수의 아리아가 끝나자 “브라보!”를 외치며 환호했고, 콘서트 후 한국과 한국의 음악 전반에 대해 김 교수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훌륭한 무대가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이 실감 안날 때도 많아요. 무대공연을 통해 한국을 알릴 기회 갖고, 좋은 이들과 만남 가질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입니다.”

# 무대는 하나님이 허락한 ‘기쁨의 공간’
2003년 기독교문화예술이 주관하는 ‘기독교 문화대상’ 음악부분 수상자 김 교수는, 현재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에 출석하며 성가대 솔리스트로 봉사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교회를 찾아 찬양도 하고 간증하길 원하지만, 워낙 바쁜 일정 때문에 무대 위에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아이다>에서 김 교수는 ‘아이다’ 역을 맡아 세계적인 테너 쥬세페 쟈코미니와 함께 공연, 화제에 올랐다. 대부분 오페라 여자주인공 역이 귀족 신분으로 남성에게 휘둘리는 순종적인 역할이라면, 아이다는 이집트 공주의 노예로 잡힌 에티오피아 공주로, 이집트 최고 권력자인 라다메스 장군의 사랑을 받지만 조국의 해방을 위해 그를 배신하고, 최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애국심과 사랑과 증오, 분노와 배반, 질투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고루 드러내는 아이다. 그래서 “무대에서 다른 이의 삶을 표현하며 이해하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즐겁다” 는 김 교수에게 ‘아이다’는 감사거리 그 자체였다.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음악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특히 오페라의 힘은 더 크다. 천재의 문학에 천재의 음악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성악가들은 매일 발성연습을 하며 음악을 익히는 것은 물론, 텍스트를 연구하고 곱씹으며 연습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사랑, 갈등을 고스란히 덧입힌다. 성악가들의 이 모든 노력, 앞선 천재적인 예술가의 이상을 대중들에게 더 잘 전달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작품을 쓴 작가와 작곡가의 예술적인 이상이 나 자신과 만날 때, 나 자신에게 또 세상 모두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연습하다 보면 ‘정말 모르겠다~!’하며 악보를 내팽겨 치며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뒤 돌아보면 그 순간까지도 소중합니다.”
우아하기 그지없는 푸른 물 위의 백조. 그러나 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물 안의 두 다리는 얼마나 분주한지…. 별세상 사람은 없다.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한 ‘승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오페라가 끝나면 무대에 선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박성희 기자


▷ 소프라노 김인혜 교수는?
서울대 음대 졸업 후 유학길에 올라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양인 최초로 줄리어드음대 성악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카네기 홀 공연 후, 미 ‘뉴욕타임즈’지로부터 “뛰어난 발성과 천부적인 음악 스타일을 가진 성악가”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김인혜 교수는 12월 21일 부천필하모닉과 부천시 시민회관 대 공연장에서 크리스마스 음악회 ‘헨델, 메시아’를, 22일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크리스마스 오페라 <라보엠>을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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