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승씨 오빠는 누나를 셋이나 두고 태어난 귀한 장남이다.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장남은 학창시절 언제나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베이비붐세대의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일류학교에 척척 합격했다. 시력이 안 좋아 군대까지 면제된 혜승씨 오빠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취직해 또래보다 빨리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누구보다도 빠른 사회인으로 자리 잡아 어머니의 버팀목이 되었다. 
결혼도 일찍 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앞선 인생을 살아온 모범생 장남. 중년기가 될 무렵, 그에게 인생이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학교를 다니고, 부부는 각자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순탄히 잡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시계 톱니바퀴처럼 앞뒤가 잘 맞아서 안정적인 삶이 무료해진 걸까…?
그러고 보니 혜승씨 오빠는 한 번도 깊이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없는 걸 느꼈다. 살짝 지나가는 바람은 있었지만 추억할 만한 사건이 없었음을 쓸쓸히 되뇌게 되었다. 70년대 대학생들의 유신 반대 등 혹독한 데모논쟁에도 기웃거려볼 틈 없이 살았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아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할게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 여겼다.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다보니 친구들과 놀러간 적도 없고 술집에서 흥건히 취해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교회생활에 빠져 지낸 것도 아니고…. 
오로지 아르바이트로 학생 가르치며 틈날 때 도서관에서 공부한 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이런 장남이 귀하고 귀했다. 빨리 졸업하고 빨리 직장 잡아 결혼하고…. ‘우리 장남, 우리 아들 최고’라는 자부심이 그득히 보였다. 그런 장남이 중년이 되며 뒤늦게 사춘기처럼 위태로운 고뇌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나만의 세계를 갖고 싶어.’
클래식 음악, 골프, 사진에 몰두하며 감정의 유희를 즐기기 시작할 즈음, 모범생 안에 숨어있던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혼이 밀물처럼 올라왔다. 그렇게 오빠에겐 사춘기에 가져야 할 이기적이고 이중적이며 자기중심적 삶이 시작되었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과거 공부에만 전념하듯 취미에도 몰두하는 습성이 있어 자기 세계 외의 것에는 귀찮아하거나 무심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옆에서 아내는 어머니처럼 바라보며 기다려야 했고, 아이들은 너그러운 아빠를 그리워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십년 동안 가족은 단란함보다 쓸쓸함을 느껴야 했다. 오십대를 훌쩍 넘긴 어느 날, 혜승씨 오빠는 지나간 세월 앞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지?” 어느 날 보니 아이들은 출가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아내도 본인도 초로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두 팔을 벌려 가정을 안아보려 하지만 모두들 머쓱해 하는 분위기였다. 
오빠는 혜승씨에게 말했다.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거 같아. 왜 그랬을까? 이제라도 좀 잘 살아보고 싶어.”
긴 얘기를 추상적인 한마디로 던진 오빠에게 혜승씨는 대답했다. 
“오빠는 사춘기에 겪어야 할 방황과 고뇌 대신 공부하는 모범생 아들로만 살아와서 그래. 사추기를 진하게 지냈다고나 할까? 사람이 살아가며 그 시절에 맞게 발달과제를 이행하는 건 참 중요하거든. 섬세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일수록 기어이 퇴행을 해서라도 구멍 난 부분을 메우게 되는 법이니까.”
10년여를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이기심에 잡혀 살다 이제 객관적 생각을 하게 된 모범생 장남. 삶의 좌우로 왔다갔다했던 지난 세월을 청산하고 이젠 균형을 맞추어 나가려나….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

<유머한마디>

굿나잇(Good Nihgt)과
굿바이(Good Bye)

자녀 넷을 둔 고령의 어머니가 운명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네 자녀를 한자리에 모두 불렀다.
그리고 첫째에게 말했다. “굿나잇.”
둘째에게도 “굿나잇.” 또 셋째에도 “굿나잇.” 
그런데 막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굿바이.”
그러자 막내가 섭섭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머니, 형들에게는 ‘굿나잇’하고 나에게는 왜 ‘굿바이’ 하십니까?”
어머니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너의 형들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단다. 하지만 너는 형들과 달리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 오늘이 나와 마지막이란다. 그러니 ‘굿바이’ 할 수 밖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