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질서를 보존합시다” 환경·소비 캠페인 ⑨

선 자리가 어디든 맘만 먹고 세면, 대충 세어도 수십개가 넘는게 도시 교회의 십자가다. 교회마다 붉은 빛, 푸른 빛을 내며 어둔 거리를 비추는 풍경에 익숙해진 도시인들에게는 동면교회의 이야기가 낯설게만 들렸다. 지난 6년간 십자가 네온을 일부러 켜지 않았다는 교회. 처음부터 그리 설계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그것도 아니란다.

꺼져있는 십자가

“처음부터 십자가 불을 소등하진 않았어요. 6년전인가, 까치가 십자가 네온을 부리로 쪼아서 꺼뜨리더라구요. 올라가서 네온을 고치려면 까치집을 헐어야해요. 두세번 그 일을 했는데 그때마다 다시 짓고, 또 끊고. 우린 또 헐고 다시 고치고. 몇 번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생각해보니 십자가의 네온싸인이 너무 밝아서 이 까치들도 불편했겠다 싶더라구요. 사람도 네온싸인을 계속 바라보면 눈이 아프듯이 말이죠. 그런 생각이 들어 교인들과 얘기를 했어요. 십자가불을 끄자고요.”
십자가 밑에 둥지를 튼 까치도 생명이고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도 생명이라고 박 목사는 말했다. 이 둘이 그 본질선상에선 일맥상통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자신의 가슴털을 뽑아 둥지안을 채워 새끼들을 따뜻하게 지켜주려는 어미의 마음과 피흘리기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했던 예수의 마음이 동일하게 느껴졌다. 도시처럼 밤이 환하지 않은 강원도 산자락의 교회는 6년째 교회 십자가를 켜지 않고 있다.

마을이 희망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생명과 평화를 주러 온 것이라 박 목사는 말했다. 농촌은 생명과 연결되는 곳이자, 생명을 생산하는 곳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근래에 들어 힘들어졌다. 그 이유를 박 목사는 내부가 아닌 외부라고 말했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아래 자본의 논리로 평화로운 마을을 파헤치는 거였다. 하나의 예로 홍천에 세워질 13곳의 골프장을 들었다. 
일단 골프장이 세워지면 생태계가 파괴되어 농사에 피해가 직접적으로 간다. 마을을 지키는 대부분의 이들은 주업이 농사라 골프장이 들어오는 것을 반길 수가 없다. 땅을 가진자의 입장에선 땅값이 올라 골프장부지로 사려는 곳에 팔면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그 옆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청천벽력같은 얘기다. 이런 아픔이 지역공동체를 자꾸 와해시키는 것이다. 마을이 자꾸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을 박 목사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농촌의 기반이 생산이잖아요. 다시말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건데, 이것마저도 농촌 역시 많은 부분이 도시화돼버렸어요. 예전엔 산에서 나무를 해와 아궁이 속에서 태워 방을 데우고 소죽을 끓이고 그걸 여물로 먹이고 다시 농사일을 했죠. 이런 순환과 생산구조가 도시화되어 자본의 논리로 가니 농촌의 마을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목사는 마을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 = 도서관

“어르신들의 경험, 지혜 그리고 젊은이들(생산가능한 인구)의 재능. 이 두 축을 잘 활용하면 마을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을에 대부분이 노인이라서 힘들지 않느냐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전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노인 한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이라 말했어요. 그만큼 노인에겐 삶의 지혜과 경륜이 있지요.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마을의 자원입니다.”
박 목사는 한 일화를 얘기해주었다. 하루는 박 목사가 달빛을 보고 “보름달이 무척이나 밝습니다”하니 70이 넘으신 교회 권사님께서 “목사님도 참, 달이 밝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맑으니까 달이 밝아 보이는 거지요.”하시는게 아닌가. 평생을 땅을 가꾸며 생명을 돌봤던 그 어르신은 달이 밝으려면 하늘이 맑아야만 한다는 걸 이미 삶으로 깨친 것이다. 서울 아래 하늘 볼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서울출신의 목사가 그런 자연의 신비를 알리 만무했다.
19년째 홍천에서 농부로, 목사로 살며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박 목사는 어르신들 때문이라고 했다. 때론 우둔하고 답답해 보일 때에도 가만히 지켜보면 다 이유가 있더라고.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울 수 없는 삶에서 터득한 지혜를 박 목사는 발견한것이리라. 박 목사는 이 소중한 것들이야말로 마을을 이끄는 힘이자, 마을을 지키는 힘이라 말했다. 이들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내 다음세대에 이어주려 하는 이가 없어 ‘자신만이라도 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정취처럼, 교회는 편리하고 경제적인 도시의 논리가 아닌 자연이 주는 가치를 몸으로 배우고, 그것을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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