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론 억울한 일을 만나기도 하고, 하나님이 침묵하시거나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들을 할 때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들은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다. 요셉이 총리로 있었을 때는 형편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요셉의 시대를 기억하던 왕들이 죽고 난 뒤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억압을 받고 고통을 당했다. 이들을 애굽으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에 전혀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것 같았다.

정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분이신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혹독한 억압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이 백성의 형편을 다 알고 계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내려가기 훨씬 이전에 이미 이 백성이 당할 고통을 다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창 15:13).

침묵의 이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은 자기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매달리듯이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 가운데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어려울 때, 내가 고통을 당할 때, 결코 외면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시고 내가 고통가운데 하나님께 나아와 탄식하고 부르짖기를 원하시며, 그 고통까지도 해결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라는 걸 믿어야 한다.

 

채우시는 은혜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탄식하고 부르짖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는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고 부르짖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와 생활을 돌아보며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야곱의 자손들이 처음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백성들의 숫자가 불어나자,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백성이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회개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의 침묵은 망각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 모든 형편을 아시고 궁극적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것 같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날마다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맡겨주신 계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더욱 더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의 임재하심을 더 강하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김성수

고신대 총장이며 기독교교육학 박사인 그는 인간을 존중하는 기독교 교육풍토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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