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편집자로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목이다. 오래 전에 나온 이 책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현장 답사기인데, 당시로서는 저자의 엄청난 발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공들여 만들면서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제법 주목받았고 독자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무명의 ‘여행가’이던 저자가 ‘문명 비평가’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편집자로서 보람도 컸다.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도 한참 떨어진,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일컫는 곳이다. 요즘은 우리나라 관광객도 제법 찾지만 당시엔 ‘생소한 지명’일 따름이었다. “발음하기조차 불편하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지명이 책 제목에 당당히 등장하게 된 것은 편집자와 발행인, 저자의 의견이 일치된 결과이기도 했다. 저자의 내공이 오롯이 묻어나고, 독자들의 취향과 흐름에도 잘 맞아떨어진 이 책에 대해 ‘제목의 승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제목의 승리라…….

책 제목을 정하면서 이런 식의 의문으로 갑론을박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도대체 ’두브로브니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있더라도, 소수의 독자들만 인지할 수 있는 제목이 과연 좋은 제목일까?” 일리 있는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생소하거나 비교적 덜 알려진 인명이나 지명, 사건명 등은 제목에 등장할 여지가 없어진다. 오히려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더 알려야 하는 게 책쟁이들의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제목의 인지도에 따른 초기 반응과 ’매출‘ 문제를 들고 나서면 조심스러워지고 주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최근 한동안 제목 정하는 일로 ‘유난스럽게’ 여러 사람 힘들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 하나님’이란 가제로 오랫동안 별문제 없었던, 그래서 최종 제목으로 확정되는가 싶었던 제목이 막판에 벽에 부딪혔다. 무신론자인 ‘○○’이 과연 책 제목에 넣기에 합당한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논란은, 어떤 대안도 백약이 무효였다. 제목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일정마저 더욱 늦어졌는데, 결국 이렇다 할 특징 없이 그냥 무난한 제목으로 정해지고 말았다.

루이스에 관한 한 권의 번역서도 홍역을 치렀다. 원서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이미 나온 책 제목과 비슷해서 혼란을 일으킨다는 지적에, 주제를 살린 다른 제목을 찾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OK. 그런데 마지막 한 단어로 끝없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약간 애매하고 미진한 구석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지만, 마침표를 찍기 위한 차선책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리새인에 관한 또 다른 번역서는 ‘제목 논란’의 정점을 찍다시피 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의 잘 읽히는 글이기에 인상적인 제목이 정해질 것으로 모두들 기대했다. 유례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모아진 수많은 후보군이 올라왔는데, 거르고 걸러낸 끝에 남은 제목들이 앞의 책들과는 또 다른 양상의 갑론을박에 휩싸였다. 모두가 만족할 제목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제목으로 정해졌다.

이름 짓기. 누군가 이를 ‘실존적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좀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들리는 말이긴 하지만, 어쩌면 인간보다 더 거칠고 험한 ‘실존적 세계’에 던져졌다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니, 태어난 흔적도 없이 스러져버릴 수도 있는 책의 운명을 생각하면, 제목 정하느라 어떤 어려움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송승호(홍성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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