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끝날 무렵 만난 기사 한 꼭지는 시간을 멈추고 살아가는 일의 질감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일흔셋 동갑인 이옥금 할머니와 이문영 할아버지. 40년 전 결혼 3년 만에 당한 교통사고로 남편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 채 병원 침대에 누워버렸고, 아내는 그런 남편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남편의 팔과 다리가 되어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된 아내는 아직도 남편이 ‘여보’ 하고 불러줄 것만 같아 희망을 놓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그 흔하디 흔한 것, ‘단 한 번의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 한 마디’를 아내는 40년간 바라고 또 바라며 살아온 겁니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도 몰라주고 자꾸만 굳어가는 남편의 손과 발을 대할 때면 먹먹해지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아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기적’에 희망을 붙듭니다. 행여 깨어난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되어버린 아내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할아버지 얼굴을 만지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세월이 어찌할 수 없는 순정과 열정을 봅니다. 주름 지고 머리카락이 세더라도 아내의 눈빛과 기운은 젊고도 푸릅니다. 그런 순정과 열정으로 모든 걸 잃어버린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기운입니다. 그 기운이 전해주는 힘에 가던 길을 멈추고 시간을 거슬러 낯설어진 몇몇 단어들을 떠올렸습니다. 순수, 헌신, 기다림, 용서, 들꽃처럼 느리고 낮은 존재들…. 그것들이 찬바람에 소름 돋듯 내 온 몸으로 오롯이 일어섭니다. 남편이 깨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내의 지칠 줄 모르는 긴장감처럼 설레기까지 합니다. 아내의 40년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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