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한국교회사 이야기1

유교가 국가 종교이자 통치 이념인 나라, 조선(朝鮮(덧말:조선)). 사농공상의 신분 체제가 법으로, 의식으로 삶 깊숙이 뿌리내린 그 곳에 마침내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만남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긴장을 부르고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현존하는 유교 질서를 부정하고 나선 탓입니다. 
어쩌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한 양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넉 달 전 나는 이 사랑방에 있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교인들이 모여 무릎 꿇고 모두 기도할 때, 나는 기분이 매우 언짢아 똑바로 편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도 무릎을 꿇기 시작했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미쳐버렸다고 말하면서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미쳐버린 징조가 아닙니다. 사실 나는 양반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이는 양반으로, 어떤 이는 상놈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이 그러한 구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드시었습니다.”
‘양반과 상놈’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반의 기득권을 한낱 쓰레기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봅니다. 이제 세상 친구들의 조롱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교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외려 자랑 삼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그 무엇도 절대의 자리에,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불평등한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결단이며, 애오라지 하나님만을 신앙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야말로 기독교의 알짬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김니다. ‘모든 것 바깥에, 모든 것 너머에’ 계시는 초월하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가치나 제도, 질서 따위를 절대시하지 않습니다. 신분으로, 성별로, 나이로, 출신 지역으로 갖가지 칸막이를 쳐놓고 차별과 억압을 일삼는 조선의 유교 질서를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위계와 차별로 찌든 조선 사회에 평등과 연대의 문화를 심고자 하였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남긴 기록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의 선생들은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기독교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함으로써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가르치는데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유교 조선의 칸막이 허물고

유교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사뭇 매섭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평등의 가르침을 “하나님께서 주신 법”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낡은 유교 질서와 타협하지 않고 맞섰습니다. 양반 남자들의 특권 공간이던 사랑방을 열어 상놈과 천민, 아낙과 아이들을 불러들여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토론하였습니다. 이야말로 유교의 칸막이 질서를 뒤집는 혁명이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그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기로 합니다.
1890년대 후반에 강화도의 기독교인들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기려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고 합니다. 같은 날에 세례를 받은 이들끼리 같은 돌림자를 써서 새 이름을 지어 부르고 족보에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부자?숙질 사이에 같은 돌림자를 쓰는 일이 생겼습니다. 당시 사회로부터 촌수와 항렬을 파괴하는 패륜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의 질서’를 좇고자 하는 초월 신앙에 터하여 그들은 혈연이나 위계를 벗어던진 ‘칸막이 없는’ 공동체를 추구하였습니다. 
조선에 온 기독교는 이렇게 유교가 만들어 놓은 칸막이를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 백성의 해방 공동체를 세워 나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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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환 목사
한국교회사를 공부하고 있는 교회사학자, 그리스도대학에서 가르치며 예람교회 공동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l 경상북도 맑은 곳에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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