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이야기]3

조선, 스스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다

조선에서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는 과정은 사뭇 특별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조선 사람이 이곳 조선 땅으로 기독교 선교사를 불러들인 까닭입니다. 서북지방의 청년들이 조선에서 기독교 역사를 개척하던 그 무렵, 새로운 문명을 배우려고 일본에 가 있던 조선의 개화 지식인이 서양의 기독교 선교사를 불러 조선말과 조선 문화를 가르치고, 한글 성경을 손에 들려 조선에 들여보낸 것입니다. 스스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성경을 번역하고, 교회를 세운 데 이어 선교의 길까지도 조선 사람 스스로 터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이수정(李樹庭)입니다.

쇄국과 개국, 척사와 개화가 날카롭게 맞서던 격랑의 시대 한가운데를 살았던 이수정은 개화를 통하여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때는 무역과 상업을 통해 나라의 부(富)를 늘리는 데 관심을 갖기도 했고, 이제는 일본의 선진 농업을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외교 사절단의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에 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임오군란이 있고 난 바로 뒤였습니다.

이수정, 세례받은 첫 번째 조선인

일본에 도착한(1882년 9월) 이수정은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농학자이며 기독교인인 츠다센과 교분을 쌓으면서 오히려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기독교야말로 갈팡질팡하는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여겨 제대로 배워보려고 아예 일본에 눌러앉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듬해 4월 29일, 마침내 미국 선교사 녹스(George W. Knox)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일본에 온지 7개월 만에 일본에서 세례 받은 첫 번째 조선인 기독교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 즈음에 작성한 이수정의 신앙 고백문의 한 대목입니다.

“무릇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이치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이것은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 등잔의 심지가 타지 않으면 빛이 없습니다. … 그러므로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 만약 종과 망치가 다 준비되어 있더라도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등잔의 심지가 크면 빛이 밝고, 작은 망치로 종을 치면 소리가 작습니다. 곧 많이 구하면 많이 얻고, 적게 믿으면 적게 이루어진다는 이치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이치’로 해석하고, 조선 사람 특유의 ‘등잔’과 ‘종’의 비유를 써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 진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식견은 물론이고 조선말로 풀어낸 솜씨가 놀랍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용이 밑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터하여 이수정은 조선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를 조직하고, 성경 번역에 착수하여 1885년 2월에는 마가복음서를 펴냈습니다.

조선에 선교의 길을 내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수정은 일본에 와있던 미국 선교사 녹스, 맥클레이(Robert S. Maclay), 루미스(Henry Loomis)를 설득하여 미국에서 발행되는 선교 잡지에 글을 싣게 하는 한편, 스스로 미국 교회에 선교사 파송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며 조선 선교를 역설하였습니다. 복음과 더불어 서구 문명을 직접 수용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나 이수정은 미국에 있는 교회의 형제 자매에게 문안드립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그에게 ‘조선의 마케도니아인’(행16:9)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기독교가 주는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한글로 옮기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복음이 확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나는 비록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이 선교사를 파송해 준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몇 명을 이곳 일본에 보내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 협의하면서 사업을 준비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조선의 복음화를 향한 이수정의 열정이 마침내 미국 교회와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의 설득에 힘입어 감리교는 맥클레이 목사를 조선에 파견하여 선교 사전 답사를 실시하였고, 장로교는 중국에 있던 알렌(Horace N. Allen)을 조선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로교의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목사와 감리교의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목사가 조선 선교의 뜻을 세우고 이수정이 있는 일본으로 왔습니다. 이수정은 이들 조선 선교의 개척자들에게 조선말과 조선 문화를 가르치고, 자신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손에 들려 1885년 4월에 조선 땅으로 들여보냅니다. 서북 지방의 젊은 상인들이 그러하였듯이 조선 사람과 조선을 살리고자 했던 개화 지식인 이수정 또한 스스로 선교사를 불러들이고 조선말로 된 성경을 주고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면서 조선 선교의 길을 터줌으로써 스스로 조선의 기독교 역사를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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