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콘서트 팀이 중국(홍콩, 광저우, 동관, 심천)으로 투어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투어 내내 현지 교회와 사역자분들의 과분한 섬김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최고급 숙소에, 최고급 식사에… 이 무슨 호화로움인가 했습니다. 지금껏 여러 투어 콘서트를 해왔지만 이번 투어는 사뭇 달랐습니다. 나눔을 위해 떠난 사역, 가진 것 다 주어도 부족할 터인데 도리어 호강이라니….
“하나님, 이 누림은 뭔가요?”
“내가 너희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니?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때마침, 제 옆에 계신 나눔 선교회 선교사님께 제가 들은 그분의 마음을 전했더니 선교사님은 순간 얼음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가 이러합니다.

두 번의 눈물

얼마 전, 선교사님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태양전지를 설치하러 가셨다가 두 번의 뼈아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첫 번째 눈물은, 도시의 문명과 이기가 지구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아와 기근으로 인해 마른 뼈에 검은 가죽만 씌어 놓은 듯한 그들의 모습, 껌뻑이는 그들의 하얀 눈동자가 갈구하는 무언의 탄원…. 생명의 위태로움이 일반이 되어버린 그들의 슬픔을 보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눈물은 탄자니아 현지 교우들이 선교사님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특송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땡볕에 아이들이 나와서 30분, 여전도회가 나와서 30분, 남전도회가 나와서 30분, 다 나와서 30분…. 열정적인 축제와도 같은 예배였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무엇을 노래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통역을 통해 그 노랫말을 듣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경배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도와 달라고, 일으켜 달라고, 형편을 살펴 달라고 노래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선교사님은 성도들의 집(천막)을 둘러보았는데 천막 입구나 여기저기에 알아볼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통역관을 통해 물어 보니 “하나님 우리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마실 것이 없습니다. 흔한 동물의 뼈마저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릴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찬양의 글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무슨 축제의 예배인가, 넘쳐나는 감사의 고백인가, 가느다란 목숨의 현실에 무슨 소망인가? 어찌 이리도 부끄러운가…. 선교사님은 그날 이후 모든 먹는 것 앞에, 모든 보이는 것 앞에 그들의 얼굴이 선혈처럼 떠올라 모든 누림의 자리가 바늘방석 같고 죄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제 마음에 들려온 음성 “내가 너희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니?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라는 말에 그 죄스럽던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나눔 사역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얼마나 원하셨던 일인지를 선교사님의 어깨너머로 보게 되었습니다.

눈물의 노래

그리고 또 하나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번 중국 나눔 투어 사역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슴 가슴에 당신의 사랑의 조각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번에 함께 콘서트를 하게 된 찬양 사역자들, 고석기님, 김승희님, 양아인님, 그리고 정경섭 선교사님, 나눔 선교회 대표 김덕규 목사님….
우리는 콘서트 내내 떨리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 사람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 그 노랫말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 삶과 고백 그 틈의 어정쩡한 것들 때문에 우리는 떨면서 노래했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한 사람씩 돌아가며 부르는 눈물의 노래였습니다.
‘생(生)의 끝에 남는 것은 모은 것이 아니라 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눔이란 기적의 씨앗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체험이 있는 우리들 삶이 되길 희망합니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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