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향한 90세 노 작곡가의 사랑, 오페라 ‘손양원’으로 꽃피다

2012년 3월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는 특별한 오페라 한 편이 무대에 걸린다. 바로 ‘손양원’. 우리에게는 ‘사랑의 원자탄’으로 많이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의 감동적인 삶과 신앙, 순교를 다룬 창작 오페라다.
헌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별로 특별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오페라가 하나 공연되는가 보다!’ 하는 정도? 하지만 이 이야기의 뒤편에는 정말 ‘놀랍고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선, 언뜻 지나쳤던 이 기사의 첫 문단을 꼼꼼히 살펴보라. 이상한 점이 눈에 띌 것이다. 어떻게 한 목회자의 일대기를 다룬 종교색 짙은 작품이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걸릴 수 있었을까? 또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오페라가 만들어진 적이 있었던가? 마지막으로, 이 오페라의 작곡자다. 그의 이름은 박재훈 목사이다.

 

오페라 ‘손양원’작곡자인 박재훈 목사

 


전설적인 지휘자

박재훈 목사, 그 이름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40~50대 장년들도 그의 이름은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개하면 바로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동요 ‘어머니의 은혜’,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펄펄 눈이 옵니다’, ‘산골짝의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 꽃송이’의 작곡자. 어린 시절 너무도 친근했던 수많은 동요의 작곡자가 바로 그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떨까? 찬송가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어서 돌아오오’, ‘산마다 불이 탄다’의 작곡자라고 소개하면 바로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락교회의 그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장본인이 바로 박재훈 목사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90세, 캐나다 토론토 거주 한인이었던 그는 이 일을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오페라 ‘손양원’의 막바지 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를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고려오페라단 단장 이기균 교수의 자택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해서 90이란 고령의 나이에 이 오페라를 쓰게 된 것일까?

여수에서 만난 손양원

영락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20여년을 헌신했던 그가 캐나다 토론토로 출국한 것은 1973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때 나이가 60세. 평생 찬양을 했으니 이제는 말씀으로 사역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한 교회가 캐나다 큰빛 장로교회다.
그런 그가 손양원 목사님을 ‘만난’ 것은 2004년, 여수에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 목사는 손양원 목사님이 평생을 소록도 나환자촌에서 목회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수 애양원에 있는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서 그는 ‘가슴’으로 손양원 목사님을 만나게 된다. 기념관에 걸려 있던 한 그림 속에서 손 목사님은 어느 나환자의 발바닥을 빨고 있었다. 환자의 발바닥에 고여 있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림은 앞에서 그는 무너졌다. 강렬한 전율이 그의 영혼을 두들겼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그는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분을 꼭 음악적으로 표현해 보겠다.”

하나님의 명령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천에 있는 한 작가에게 부탁해 오페라를 위한 대본을 받았지만, 거기에 붙일 음악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1년 동안 쥐어짜듯이 써낸 것이 겨우 1막이었다.
“음악은 흘러나와야 돼. 쥐어짠다고 나오는 게 아냐. 그때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작가였어. 영감을 불러일으킬 대사가 있다면 곡은 쉽게 흘러나올 것 같았어. 그런데 그 좋은 작가라는 게 영 나타나지를 않는 거야. 무려 2년을 기다렸어.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김희보 목사가 떠올랐어. 40년 전에 내게 오페라 ‘에스더’의 대본을 써 준 작가였거든. 김 목사에게 팩스를 넣었지. 그랬더니 2주 만에 대본이 왔어. 그 대본을 읽는데 바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거야.”
김 목사는 그동안 세 편의 오페라를 썼다. 그중 70년대에 작곡했던 ‘에스더’는 넉 달 만에 썼다. 그 후 30년이 흘러 쓴 ‘유관순’은 끝마치는데 2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없었다. 나이도 들었고 건강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4년을 목표로 잡았다. 말이 4년이지 그냥 죽을 때까지 써보자는 결심이었다. 그래도 작업은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었다.
2009년 8월, 여수에서 만났던 손철환 장로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오페라 쓴 거 어떻게 됐어? 뭔 오페라를 5년이나 쓰나? 2012년에 여수세계박람회가 있다. 그때 여수가 전 세계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손양원 목사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때 공연을 올릴 수 있게 작곡을 마치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박 목사는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2년 만에 작품을 완성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손 장로는 매주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한 다섯 번쯤 거절했는데, 거절하다보니 손 장로의 요청이 꼭 하나님의 명령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쓰긴 써야겠는데 몸이 따라 주지를 않습니다.” 이런 박 목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단호했다. “네가 쓰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박 목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다. “알겠습니다. 명령이니까 쓰겠습니다. 대신 이 작품을 쓰는 2년 동안 건강을 허락해주십시오.”
당시 박 목사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고혈압에 당뇨,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오페라를 쓰던 2년 동안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사히 오페라의 전 곡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박 목사는 이 오페라가 “주님이 쓰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박 목사의 작곡 소식을 전해들은 박태겸 목사 등 뜻있는 몇몇 목회자들이 후원회를 조직, 그의 작곡 활동을 뒷받침했다.

박 목사의 소망

예술의 전당을 대관하게 된 과정도 놀라웠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2년 전에 사용 신청을 하고 전당 측으로부터 공연 허가를 얻어야 한다. 물론 박 목사는 사용 신청을 하지 않았다. 또 신청을 한다 하더라도 허락이 날지도 미지수였다. 예술의전당은 종교적 색채를 지닌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걸 극히 꺼리는 편이다.
그런데 ‘손양원’ 악보를 완성하고 공연할 장소를 물색할 즈음, 신기하게도 2년 전에 사용 신청을 해서 허락을 얻었던 사람이 갑자기 공연을 포기했다.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 빈자리가 박 목사에게 돌아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박 목사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로 설명했다. “하나님은 내가 작곡을 끝내길 기다리고 계셨던 거야. 정확하게 그 시점에 맞춰 예술의전당을 준비해놓고 계셨던 거지. 아마 내가 신청했다면 공연 허가도 나지 않았을 거야.”
근 3년에 걸친 작곡 기간 동안 박 목사는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의 작업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대작 오페라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새롭게 고쳐 써야 할 부분들도 많고,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너무도 힘든 힘든 과정이지만 박 목사는 소망을 품고 있다. “손양원 같은 목사가 한국에 많이 나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교회에 희망이 없어. 한국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흥이 됐지만 그건 사상누각과 같아. 영적 부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미래는 어려워.” 박 목사는 그래서 한국의 모든 목회자가 다 이 오페라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 목사는 서울 공연이 끝나면 전국 대도시를 다 돌 생각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박 목사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돈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90세, 한쪽 눈의 시력 상실, 나오지 않는 목소리, 기력 없는 육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老) 사역자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그의 가슴만은 20대의 젊음으로 싱싱하게 박동치고 있다.

김지홍 기자pow97@iwithjes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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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훈 목사 약력

‣1922년 11월생
‣평양 요한학교 졸업/ 일본 동경 제국고등음악학교 수학
‣미국 웨스트민스터 합창대학(프린스턴) 수학/ 크리스챤 신학교 졸업
‣한양대 음대 교수 역임(작곡·합창지휘)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캐나다 큰빛 장로교회 원로목사
‣작품
- 오라토리오 | ‘성 마가 수난음악’
- 칸타타 | ‘뿌리 온 땅에 편안하리’
- 오페라 | ‘에스더’, ‘유관순’, ‘손양원’
- 동요 | ‘어머니의 은혜’,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펄펄 눈이 옵니다’, ‘산골짝의 다람쥐’ 등
- 찬송가 |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어서 돌아오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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