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질서를 보존합시다” 환경·소비 캠페인 <2> 재생종이로 주보 만들기

오전 10시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성도들에게 안내를 맡은 집사님들은 주보를 나누어 준다. 주보를 받아 든 성도들은 자리를 잡고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주보를 뒤적거리며 성경구절과 찬송가 장을 찾아가며 표시하기도 한다. 예배가 시작된 후에는 예배당에 설치된 대형 소형 모니터 화면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주보의 임무는 끝이 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보는 버려진다.
기존에 순서지로서의 주보의 기능을 모니터 화면이 대신하면서 사실 요즘 많은 경우 주보는 역할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교회의 주보는 자기 본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보는 교회의 성장과 함께 탈바꿈한다. 교인들의 소식과 행사들이 늘어나면서 내용도 복잡해졌다. 또, 흑백사진은 컬러가 되고, 종이는 코팅되어 반들반들 고급화되기도 했다.

 

모든 문서 재생지로 바꾸기로

교회의 이미지를 판가름하는 ‘교회의 얼굴’이라는 일반적인 대세를 거스르며, 약 1년여 전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한 교회가 과감한 실천을 시작했다. 천편일률적인 외향을 벗어버리고 친환경과 메시지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꽤 괜찮은 주보’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재생용지가 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재생용지는 기존의 주보 백색용지와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왕이면 좋은 종이를 쓰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교회의 과감한 선택에 지금까지 큰 불만을 토로한 성도는 없었습니다.”
이 교회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장 양정석 집사의 말이다.  

친환경적이고 창조적인 주보 만들기로 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예전에는 재생지가 일반 용지보다 오히려 비쌌다. 높은 가격을 감당하고 굳이 미관상 예쁘지도 않은 누리끼리한 색상의 재생지를 사용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재생용지와 일반 백색용지의 가격 차이가 없어지면서 재생용지로 전면 교체한 것이다. 이 교회는 매 주 1200부의 주보와 어르신들을 위한 주보 100부를 재생용지로 인쇄한다. 총 12면짜리 주보 1300부 정도에 드는 인쇄비용이 약 25만원 정도인데, 앞으로 교회 내 각 부서의 모든 문서들을 재생지로 단계적으로 바꾸어 나갈 계획이다.
양 집사는 “재생용지를 도입한 초창기에는 재생주보에 대한 낯설음 때문인지 거부반응도 있었지만, 외향보다도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목사님 설교를 담은 소식지의 기능에 충실한 주보를 보면서 성도들이 다른 사회와 환경문제에도 눈을 뜨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 말했다.
이렇듯 재생용지로 만든 주보가 나오면서 교회 내에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들이 이어졌다. 
청년부가 한 번 모임을 가진 후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비롯하여 각종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교회의 잔소리가 심해지면 반발만 커지기 마련인데, 교회 내 재생주보를 시작으로 친환경적 분위기가 조성되니 각 부서마다 쓰레기통을 없애고 분리수거를 실시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리는 데에도 성도들의 협조가 있었다.

 

친환경적 분위기 조성도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의 위기 시대에 영적 눈을 떠, 재생종이 ‘되살림’ 의미와 미색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이 더없이 필요하다. 

변지원 집사는 경북 구미에서 교회를 다니다 5년 전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 제가 이 교회에 왔을 때에는 에어컨도 없었어요. 강남 한 복판에 있는 교회에 에어컨도 없다는게 사실 놀라웠지만 지금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어요. 특히 웅장한 교회 건물 사진이 들어있는 화려한 주보보다는 지금의 재생용지의 느낌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리 교회는 강대상 장식도 없어요”
이 교회의 누르스름한 주보 제일 앞면 하단에는 ‘공동기도제목’이 있다. 여기에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을 양육해 선교사로 길러내기 위한 교회의 선교에 대한 비전, 남미 아프리카의 아동 노동력 착취의 문제와 같은 공정무역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 북한과의 원만한 화해와 협력을 고민하는 평화에 대한 바람, 병중에 있는 교인들에 대한 위로가 담겨있다.
이처럼 주보는 화려한 외양을 버리고,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성도와 지역 사회, 국가와 세계를 품고 고민하는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 
요즘 같은 인쇄물의 홍수 속에 사는 사람은 주보의 변신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교회가 겉치레를 벗고 ‘겸손한’ 재생용지 주보로 변신하며 ‘복음의 메시지’ 에만 집중하면서 이 척박한 강남 도심 한 복판에 수많은 이웃들은 재생용지 주보가 주는 깊은 뜻을 생각하며 교회로 찾아왔다.
바쁜 토요일 오후 주보제작과 새해 교회요람 준비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 양정석 사무장은 교회의 재생주보 사용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보가 예전과 같이 일방적인 순서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통의 시대에 지역 사회와 닫혀가는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고,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하는데에 종이의 재질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재생종이’ 는 말 그대로 버려진 종이를 다시 되살린 종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의 위기 시대에, 영적 눈을 떠 재생종이의 ‘되살림’ 의미와 미색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이 더없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주보를 만드는 것은 교회의 위치나 크기에 상관없다. 복음의 메시지를 소개하고 예수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주보를 만드는 데는 주보의 재질도 상관없다.
나무를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궁극적으로는 메말라 가는 우리의 영성을 살리는, 메시지가 있는 주보를 만드는 일이 창조 질서 보존의 첫 걸음이 아닐까.

김지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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