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길목

의식
빼어난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고자 할 때 흔히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에는 인간이 그려놓은 그림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아름답고 또 대견스럽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아무리 놀라운 그림의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화가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 폭의 그림 안에 충분히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자연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말할 때면 우리는 어떤 주저함 없이 곧잘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표현합니다. 또 그런 표현을 순순히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손으로 겨우 조금, 가까스로 그려볼 수밖에 없는데도 그것을 한껏 높이보고자 하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오만함과 도도함일 것입니다.
이러한 맥에서 우리는 '감사'를 생각합니다. 자신은 감사에 인색하면서도 자기에게 감사해야 할 사람이라고 여겨온 사람이 감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여 분통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는 사람을 좋게 여기고 높이 봅니다. 감사는 분명 예의바른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사에 대해서 우리 모두 민감합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감사에 더하여,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는 감사의 뜻에 대해서는 모두 둔감합니다. 창조 질서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받은 혜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니지 않고 있습니다. 해의 빛이 내리쬐고, 바람이 불고 또 물가에 물이 흐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감사의 마음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 그런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노력과 업적을 높게 치켜세웁니다. 자연에서 얻는 혜택에 대해서는 어떤 감사의 마음도 없이 우쭐거리며 자신을 내세우기만 합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 때문에 측량할 길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도 인간의 재주와 솜씨가 월등 뛰어나다고 여기게 되었고, 한량없는 자연의 혜택보다도 인간의 능력과 노력이 월등 크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말과 표현은 인간 자신의 의식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말과 표현 속에는 인간의 재주와 솜씨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뛰어나다는 인간중심의 의식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항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도대체 자기 노력으로 내리쬐는 해의 빛 한 가닥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흐르는 물을 만들어 논밭을 적실 수 있겠습니까? 그럴 능력이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을 번 사람들이 자기의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거드름을 피웁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도움을 받고서, 아니 자연의 도움을 받고서, 낮의 해, 밤의 달, 바람과 물의 혜택을 받아가며, 이 자연의 땅 위에서 재물을 얻습니다. 돈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 생존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분수없이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다고 스스로를 이해합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창조 질서 안의 피조물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무한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삶의 진실을 간파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은 창조 질서 속에 자리한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삶이 모두 자신이 만들어 가고 자신이 이룩한 것이라는 우둔한 생각과 착각과 환상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물과 빛을 지으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그 아래 풀과 꽃과 나무를 지으신 이의 창조 질서 앞에 감사하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 오묘한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은 어느 피조물의 붓으로 다 그려내거나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며 겸허히 고백합니다.

자족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존재이고, 그러한 감사를 할 줄 모르고 그러한 감사를 알지 못하고 그러한 감사를 아예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바울 사도가 이러한 점을 모범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법을/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가난 때문에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지평에는 떠오르지 않는 하늘의 세계에 맞닿아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이든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을 수 있어야 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법을/자족하기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도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넉넉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형편에 처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담담한 마음가짐, 창조 질서의 혜택을 감사할 줄 알고 어떤 삶의 조건에서도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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