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7일, 서울 중구 저동의 서울백병원 9층 입원실에는 다소 독특한 꼬마 손님들이 입원해 있었다. 멀리 몽골에서 날아온 이 꼬마 손님들은 모두 심장병 수술을 받기 위해 입국한 환자들이었다. 너민에르덴(남·6개월), 바르스볼드(여·7개월), 발람꼴나뭉(여·7개월), 밧트제책(여·1세), 완칭수렌(남·4세), 하시끄수렌(여·6개월), 이 6명 가운데 5명이 수술을 받았고, 하시끄수렌만 수술을 받지 못한 채 13일 몽골로 되돌아갔다. 수술 전에 가진 정밀검사에서 폐동맥고혈압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멀리 몽골에서부터 이들을 데려다 심장수술을 해 준 단체는 한국밀알선교회심장재단(회장 이정재 목사, www.kmilal.com, 이하 밀알심장재단). 베스트셀러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와 협력해 무료로 사랑의 의술을 베풀었다. 밀알심장재단이 이처럼 매년 무료심장수술을 해주는 심장병 환자들은 150~200여명. 그 숫자는 지난 24년간 2,270여명에 이르고 대상 지역은 국내를 포함,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무려 10여개 국가에 이르고 있다.

밀알심장재단은 현재 사단법인으로 국가 보조를 한 푼도 받고 있지 않다. 오로지 독지가들의 후원과 헌금만으로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사역을 추진해가고 있다. 게다가 이 단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심장병 환자들을 데려다가 수술을 시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취업까지 연결시켜주고 있다.

가령, 심장 수술로 밀알심장재단과 인연이 맺어진 ‘브우’(베트남)는 재단의 후원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았고, ‘헝그르’(몽골)는 울란바토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여자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수술이 계기가 되어 밀알심장재단의 도움으로 후원 병원에 간호사로 취업한 경우도 있다. 무료로 심장 수술을 시켜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목회적 측면에서 일종의 ‘케어’(Care)를 하는 것이다. 이 단체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단법인과 차별화되어 ‘선교회’임을 보여주는 극명한 차이점이다.

밀알심장재단의 이런 ‘독특한’ 사역의 이면에는 대표를 맡고 있는 회장 이정재 목사의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개인사가 숨어 있다.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그의 개인사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며, 그 시련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거제도의 한 청년이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는 대우조선소였다. 다른 직장에 비해 월급은 많았지만, 개인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었던 이곳에서(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대우조선의 근무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이 청년은 24미터 높이의 작업장에서 바닥으로 추락한다. 회사에 입사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청년의 추락을 보고 ‘즉사’라고 생각했다. 24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운이 좋아 즉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생 불구자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 역시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몸에 전달돼오는 둔중한 충격 속에서 의식은 삶과 죽음의 기로를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삶과 죽음의 그 경계선에서 이 청년은 예수님을 만났다. 뚜렷한 의식이 아니니 환상과 같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한 그 환상 속에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내가 너에게 생명을 주었는데 너는 이웃을 위하여 무엇을 주었느냐?”고 물었다. 이미 자신은 죽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이 청년은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주님, 한 번만 제 생명을 살려주신다면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 오직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청년은 병원에서 깨어났다. 죽지 않았던 것이다. 치아가 6대 부러졌고, 얼굴이 찢어져 12바늘을 꿰맸다. 어깨뼈도 부서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심장병 환자들과의 만남

병원에서 퇴원한 청년은 곧바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회사는 보직을 사무직으로 바꿔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청년의 결심은 단호했다. 가족들의 만류도 극렬했다. 거제도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자식이 월급 많이 주는 조선소에 취직해서 이제 살 길이 열렸다고 기뻐했는데, 사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그래도 청년은 사고 보상금 1천만 원을 퇴직금으로 받고 회사를 떠났다.

1천만 원. 지금으로서는 별로 큰 돈도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다. 공무원이 10년을 꼬박 모아야 만져볼 수 있는 액수였다. 청년은 이 돈을 가지고 엉뚱하게도 심장재단을 설립한다. 부산의 복음병원(당시 고신의료원)에서 만난 심장병 환자들이 청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헐떡거리며 새파랗게 입술이 죽어가던 심장병 환자들의 모습은 이 청년에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만났던 예수님과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바로 그 심장병 환자들과 동행하는 길임을 이 청년은 운명적으로 직감한다. 이 청년이 바로 밀알심장재단의 대표 이정재 목사이다.

사명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과정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목사의 첫 환자는 박지혜와 차하나란 심장병 어린이였다. 둘 다 집안이 너무 가난했고, 수술을 할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이 목사는 두 어린이의 수술비를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혼자 생각에 자신이 받은 보상금 1천만 원과 다른 교회들의 협조를 받으면 충분히 두 아이는 수술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거리로 나서다

이 목사는 전국 교회로 공문을 돌렸다. 사정을 설명하고 조금씩만 후원을 해주면 두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전국 교회에 공문을 띄웠지만,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자신의 사례비 가운데 10만원을 후원금으로 보내온 것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이 목사는 절망했다.

하지만 멍하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두 생명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이를 악문 이 목사는 모금통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시장에서 기차역, 경찰서, 해수욕장, 교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심지어는 나이트클럽에 사찰까지 좇아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눈만 뜨면 모금을 다녔다. 그의 형색은 반쯤 미친 사람 아니면 그 자신이 심장병 환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모금을 해서 이 목사는 두 아이의 심장병 수술을 마친다. 밀알심장재단이 정식으로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강단을 비울 수 없었던 목회자의 눈물

심장병 환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만난 이 목사의 ‘이웃’들은 너무도 처절했다. 심장병이 걸려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 심장병에 걸린 아이를 낳았다는 죄로 시댁에서 아이와 함께 거리로 쫓겨난 모자,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두 차례의 심장병 수술 끝에 죽은 아이 등 가슴이 아파 도저히 다 이야기하기 힘든 사연들로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서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연 가운데 하나는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의 이야기다. 아이의 병을 알고는 있었지만 수술비가 없어 애만 태우던 개척교회 목사님은 밀알심장재단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요청한다. 밀알에서는 돕기로 약속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수술을 시킨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회복실로 실려 온 아이는 하지만 5일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의료진의 통보에 이 목사는 한참을 망설이다 사모에게 전화를 한다. “내일이 토요일이고 모레가 주일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모의 연락을 받은 개척교회 목사님이 병원으로 달려온다.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하던 개척교회 목사님은 기도를 마친 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이의 산소 호흡기를 떼어낸다. 그러고는 이 목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모레는 주일이니 오늘 퇴원하여 화장하겠습니다. 병원은 내일 정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은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목사는 강단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이 목사는 개척교회 목사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돈이 없어 자식의 고통을 보면서도 수술을 해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눈물과, 어려운 교회 형편에 성도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목자의 심정…. 그 앞에서 그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이 목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느꼈던 것이다.

 

진정한 부자

이렇게 처절한 이웃들 가운데서 이 목사는 자신을 살려준 예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본다. 그 길은 새파랗게 질린 심장병 환자들의 입술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었고, 가냘프게 헐떡이는 그들의 심장을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펄떡이는 새로운 심장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금을 하다 경찰서로 끌려가는 일이 있어도, 믿던 지인에게 배신을 당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사명을 접을 수는 없었다.

기적적으로 수술비를 맞춰가며 사역을 계속하는 그에게 시간이 흐르면서 도움의 손길들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는 자신의 병원비 600만원을 헌금한 팔순의 안동 할머니가 있었고, 자신의 결혼자금을 심장병 환자 수술에 써달라고 내놓은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또 아이들의 돌잔치 대신 그 비용을 후원금으로 내 논 ‘개념 있는’ 부부가 있었고, 디스크에 걸릴 정도로 무리하며 아이스크림을 팔아 밀알을 후원하는 목사님과 교회 성도들이 있다. 또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살며 모은 피 같고 생명 같은 돈으로 수술비를 대주는 할아버지가 있다.

 

아름다운 생명의 합창곡

그래서 밀알의 사역은 밀알 혼자 밀고 가는 단독공연이 아니다. 수많은 후원자들과 밀알심장재단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생명의 합창곡이다.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 차가운 세상의 팍팍함 속에서, 그래도 그 어느 한 구석에는 아직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따뜻한 희망의 온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믿음의 증거들이다.

이 목사는 이러한 합창곡의 참다운 지휘자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사역 초기 이 일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하게 동분서주했던 이 목사는 참담한 실패와 쓰린 좌절을 경험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이 목사는 “이 일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이 회복될 수 있었고, 진정으로 사역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심장병 환자를 향한 밀알의 사랑은 이제 국내를 넘어 전 세계 10여 개 국으로 뻗어가고 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 사랑의 정신은 효율성과 경제적 가치를 앞세우는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웃의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모금통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밀알의 행동은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이야말로 이 척박하고 각박한 세상을 밑바닥에서부터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인 것이다.

김지홍 기자 pow97@iwithjes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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